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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an 28. 2021

세번째 결혼을 위한 조언


수북이 쌓아올린 회접시를 거실에 둘러앉은 모두가 보았다. 할머니, , 엄마, 아빠,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 아버지 이렇게다. 겹겹이 쌓아올려진  위로 신이 나서 형과 동생을 데리고 나가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빠에게 물었다.


-  이래가지고 얼마줬노?


아빠 대신 작은 아버지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10만원 줬습니더.


아빠는 그런 동생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엄마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 두 장 줬다, 두 장.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대략 20만원 정도를 주고 그렇게 수북한 회 접시를 두 개 받아온 것 같다. 20만원어치라고 해도 양은 엄청 많았으므로 그마저도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횟집 주인의 일방적인 희생에 가까운 가격이다.


김명실 할아버지네 집안과 아무런 연도 교류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회를 퍼다줄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횟집 주인이 이 가격에 이 정도 품질의 회를 이만큼이나 줄 수 있는지를 떠올려봤는데,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집 아래로  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마을회관인지 교회인지 모를 건물이 나오고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우리 막내 고모가 다녔던 분교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몽돌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왼쪽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횟집이  편에   있었는데,    곳이 옥근 삼촌의 횟집이다.


옥근 삼촌. 사실 난 삼촌의 이름이 옥근인지 옥건인지 옥권인지도 확실히 모른다. 그는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뱃사람의 용모를 갖추고 있다. 뒤로 묶은 긴 곱슬머리, 강인하게 각진 턱, 다부진 몸. 엄마가 어릴 적부터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다. 막연히 김명실 할아버지네와 먼 혈연 관계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 어데서 받아가 왔노?


- 옥그이지 옥그이.


역시나하며 익숙한 이름에  감흥없이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가 모여앉은 거실의 열린 창문으로 우람한 팔이 불쑥 튀어 나왔다.


- 머리하고  빼고 잡수소!


얼굴도 무엇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단단한 팔만 불쑥 나온 채 그의 팔뚝만한 생선이 얌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너무 황당하여 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실한 생선에 감탄하며 와이구야, 하며 그것을 보고 있다.  


- 이기 뭐고?


할머니의 외마디 외침에 큰아버지가 생선을 받으시려고 일어나셨다. 큰아버지는 생선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다시 외쳤다.


- 이기 뭐시고?


- 아, 매운탕 해묵든지 아니면 회 치든지 머리 싹 빼소.


- 앉아서 회 좀 뜨고 가라.


- 나도 바쁜 사람이요, 가야 된다니까.


-  잔만 하고 가라! 빨리 앉아라.


할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바쁜 옥근 삼촌은 하는  없이 들어오게 되었다.


- —, 빨리 가야되는데. 지금   태산이라.


옥근 삼촌이 내가 예상한 모습 그대로 생선을 들고 거실로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번째 방으로 들어왔다. 이건 옥근 삼촌이 끼어든 판의 대화에 관심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편안하기 대화를 엿듣고자 함이다. 두번째 방의 문은 어차피 제대로 닫기지 않아 아무리 힘을 줘도 문이 문턱에 가까스로 걸칠 뿐이다. 엿듣기의 즐거움을 위해  애쓰지 않고 방문을  정도  두어도 충분했다. 그러고선 항시  전용 자리가 있는 매트리스 위에 편안하게 누웠다. 그리고 간신히 닫긴  닫기지 않은  너머 어른들의 이야기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엿듣는 것이다.




옥근 삼촌의 근황은 심심찮게 제 3자로부터 들려왔는데 이번에는 아빠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모두 삼촌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았다. 내가 매트리스 위에서 엿들은 바에 의하면 옥근 삼촌은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새 여자와 사는 중이었다. 옥근 삼촌의 여성 편력은 화려했는데, 도대체 그 매력이 뭘까 싶을 정도로 갈아치운 여자들이 많았다. 실은 갈아치웠다고 이야기를 전해주는 제 3자가 포장을 그리 해준 것일뿐 내가 생각하기로는 대개 그 여자들이 못 이겨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야 별 생각없이 들은 옥근 삼촌의 여자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왠지 떠나는 여자들이 같은 심정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삼촌을 잘 모르지만서도 잘못했다고 빌기보다는 갈라면 가라! 하고 외치는 삼촌의 모습이 더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 형제와 옥근 삼촌의 질의응답 시간을 엿듣다보니, 이번의 새 여자는 임신을 한 모양이었다. 결혼필수주의자이자, 아이를 갖는 것이 부부의 재미이자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가 생겼으니 안 좋나? 그것도 새로운 재미 아이가.


- 아가 생겼으면 이제 좀 붙어살겄지.


큰아버지도 거들었지만 그에 답하는 옥근 삼촌의 목소리는  뜨뜻미지근 하다.


- 재미는 무신. 인자 꼼짝없이 묶여야 된다니까.


옥근 삼촌의  말은 과연 농담일까, 진담일까, 아니면 농담  진담 반일까 생각했지만 어느 쪽이든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결혼 하지 마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지마라,  같은 농담과 짤방이   유행했지만 내가 그런 류의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수도 있다. 계획에 있던 임신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는 여자 분께서 지금쯤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서 마냥 기뻐하고 있을까? 설사 기뻐하고 있다  지라도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뻐할 사람은 없을  같은데.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하지만 의리상  잔은 해야하는 사람이  그렇듯, 옥근 삼촌은 앉은 거의  시간이 되도록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음주토크는 계속되어 목소리는  커졌다가 토크의 열기가 소강되었는지 목소리 톤이 다들 낮아졌다. 문에다 귀를 바싹 대고 들려오는 바로 추측해보건대 아무래도 옥근 삼촌은 조만간 박탈될(?) 자신의 자유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한  같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내가 봐도 삼촌이 주장하는 자유 예찬에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 진다. 그런데 하물며  자리에 당장 옥근 삼촌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 80 조순이 여사가 그걸 그냥 넘어갈 리가 있나.


- 마 시끄럽다 마!


할머니의 격앙된 목소리가  빨간 벽돌  안에 울려퍼졌다.


- , 할매  그러요. 나도 답답하니까 그라는 .


- 답답하긴 뭘 답답해! 그럼 새끼가 생겼는데 그 정도도 안 할것가!


- 그게 아이고. 내가 여자랑 한두번 살아보요,  맞는지도 모르겠고


옥근 삼촌은 굴하지 않고 계속 웅얼거렸는데 이번엔 애먼 곳에서 할머니가 했던 명대사가 다시 들려왔다.

 

-  시끄럽다 !


누구 목소리인가 하니, 어지간해선   하지 않는 우리 큰어머니다.  생각엔  자리에 있었던 (엿듣고 있는  포함) 모든 여자들은 다들 조순이 할머니와 비슷한 생각을   같다. 큰어머니의 발언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  살면서  맞는다는 부부는 한번도  적이 없다. 부인이랑 맞는다고 하면 그건  사람이 이상한기다!


옥근 삼촌이 한층  힘을 잃은 목소리로 혼자서 웅얼거리는 가운데,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토크를 파토냈다.


- 인자 가라! 씨잘데기 없는 소리 듣기 싫다.


생선과 함께 등장해 환영을 받았던 그는 쫓겨나듯이 쓸쓸하게 퇴장해야만 했다. 주섬주섬 챙기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풀죽은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 야—, 나는 이제 가요.


그제서야 한참간 들려오지 않던 아빠와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목소리가 서둘러 배웅을 하는 것이 들렸다. 남자들의 목소리가 한동안 들리지 않아서 나는 다들 어디로 나가셨나 싶었는데, 다들 숨을 죽이고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옥근 삼촌을 살벌하게 말로 후드려 패는 현장에서 남자들  아무도 끼어들어 편을 들거나 말리거나 하지 못했다는  그저 웃음이  뿐이다.


옥근 삼촌이 가고 난 이후, 옥근 삼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저마다 생각한 말을 내뱉었다. 누가 한 말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이 요지는 모두 같았다.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그의 아내를 걱정하고, 결혼 생활을 걱정했으며, 그럼에도 자식이 생겼음에는 응당 그래야만 할 일을 한 것처럼 여기거나 자유로운 뱃사람이던 그를 정착시킬 좋은 계기로 보았다. 그가 결혼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결혼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충돌하고 있었다.


옥근 삼촌은 자신의 세번째 결혼에 대해서 제 3자들이 이렇게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 날 밤이 깊도록 오간 결혼, 재혼, 삼혼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났다. 원래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황마다 또 달라지는 것이 결혼 생활 아니던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뚜렷한 답을 낼 수도 없는 문제에 이미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상황마저 닥쳤으니 제 3자들이 뭘 어쩔 수 있겠나. 본인마저 결혼을 앞두고 횡설수설하고 있던 그 날 오직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마 시끄럽다 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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