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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Mar 14. 2021

그렇게 되기 싫어했던 회사원도 겨우 됐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엔 공부로 이름을 날리던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내내 1등을 놓친 적 없거나, 심심하면 1등을 하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따라서 외국에서 보낸 시간이 길던 친구들이었다. 현재 고등학생들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명문대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성적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데 익숙했고 서열의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기에 성적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전체 인구 중에서 공부로 먹고 살 사람은 성적 상위 10퍼센트 정도라고 했던가? 우리는 성적 지상주의 사회에서 공부로 먹고 살아가게 될 특정 퍼센트 안에 드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학교에 시험을 쳐서 들어왔다.


나는 한 과목에 틀릴 만한 개수를 전 과목을 통틀어 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입시 전문 강사들은 그 친구들의 모의고사 성적을 보고 놀라며 우스갯소리로 '신들의 정원에서 논다'라고 표현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 혹은 성적을 잘 받는 것은 신에 비견될만큼 우리에게 가장 부러운 재능이었다. 공부하는 능력을 부러워한 것은 그 뒤에 투영된 욕망 때문이다. 누구는 명문 대학 진학 이후에 갖게 될 좋은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부러워 했을 것이고, 나같은 경우는 그렇게 계속 공부해서 자신의 최종적인 꿈까지도 이루어내고야 말 그 친구들의 미래를 부러워 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우리가 회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들이 당시에 꿈꾼 직업 모두를 크게 분류하자면 다 회사원이 맞겠지만 아무도 그 직업 모두를 '회사원'이라는 특색없고 멋없는 이름으로 퉁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 장래희망을 말해보라는 물음에 회사원이라고 답하는 학생이 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꿈은 혹독한 현실과 냉혹한 사회를 몰랐던 고등학생이어서 가능했다. 회사원이 된다면 해외 유명 모 도시의 빌딩숲 사이에서 멋지게 수트 휘날리며 자아 실현을 하는 성공적인 어른이 될 줄만 알았다. 늘 출근하기 싫어서 끙끙대고 일주일 내내 주말만 기다리는 회사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하물며 공무원은 누가 상상이라도 해 봤을까? 그 당시 우리 학교의 어떤 친구가 공무원을 꿈꾼다고 한다면 그건 고시 패스를 의미했다.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명문대를 나와서 5급보다 직급이 낮은 일반 공무원을 한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 간판에 목숨 걸고 공부해온 역사를 되새겨보면 당연한 결과였고,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고시 공부를 할 것이라며 선언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다.


올해로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딱 10년이 되었다. 29세가 되니 30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20대 전체를 통틀어서 난 무엇을 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근황 토크를 해보니 하나같이 다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생각의 톤은 다들 부정적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이러고 있는 것은 우리들 중 누구도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 되지 못했기 때문인걸까.


시대가 꿈을 작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시대를 막론하고 자기가 꿈꾸는 모습의 어른이 되기란 원래 어려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까지 이 시대는 1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게 된 건지 그것도 이젠 모르겠다.



이젠 취업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에 남들이 알 만한 회사에 다닌다거나 직급에 상관없이 공무원이 되었다고 하면 축하 받아야 할 일이라고들 한다.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것도 안다. 셀 수도 없는 취업 준비생과 셀 수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 근로자들에겐 이 소리조차 사치라는 것도 알 기에 죄송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걸 인식한다고 해서 내 처지와 기분이 나아지는 건 없다. 타인의 상황과 비교해보고 내가 더 낫다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어찌 보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이다. 한번 자신의 삶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느껴버리면 다른 사람이 어떻건 간에 자신의 문제와 상황밖에 보이지 않더라.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청년 실업이 몇 십만에 육박하는...' 어쩌고 했던 시트콤 캐릭터의 대사 따윈 이젠 가볍게 웃어넘긴다. 몇 십만? 지금 우리 사회엔 청년 수백만이 구직난에 허덕인다. 그럼 바늘 구멍을 통과한 이들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과도한 오버스펙화로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 시절에 대한 보상이 고작 이런 단조로운 직장 생활이라는 것에 깊은 회의감이 온다. 자아 실현이니 일하는 재미니 팀워크니 다 때려 치우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 삶.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렇게 되기 싫어했던, 마지못해 돈 벌기 위해서 다니는 회사원이 되고 말았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이 자리까지도 겨우 올 수 있었을 정도로 치열했기에 어떤 때는 눈물겹기도 하다. 꿈을 꾸고, 노력을 하고, 열심히 살은 대가로 고등학교 친구들은 회사원과 공무원이 되었다. 수트 휘날리며 자아실현하는 회사원 말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자랑스러운 공무원 말고, 우리가 단 한번도 꿈꾼 적 없었던 단조로운 삶을 살며 월급날이나 기다리는 직장인이 되었다. 어쩌다 간신히 친구를 만나도 더 이상 세상 해맑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이런 말로 한탄을 하며 회포를 푼다.  



- 이런 일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친구들인데.


- 내가 아닌 그 누가 와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 저렇게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닌데.


- 만족하고 사는 분도 많은 거 알아. 근데 그렇다고 해도 이 직업을 위해서 이 정도로 모든 사람이 노력을 하고 목을 맨다는 건 말이 안돼.


- 엄청난 손실이야.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한 이들은 바늘 구멍을 통과한 끝에 회의감을 얻었기에 꿈을 끝까지 좇는 친구들을 선망한다. 하지만 꿈을 계속 좇는 이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의 삶도 남들 보기에나 낭만적이지 대개 본인들은 팍팍한 현실에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친구 중 내 절친은 지금도 안정보다는 도전적인 길을 가고 있기에 나같이 현실을 택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선망의 대상이다. 우리는 늘 그녀를 보면서 대단하다,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와 같은 말을 선망 혹은 자조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녀도 박한 월급과 불투명한 회사의 미래에 어느 날은 이렇게 생각했다. 왜 나는 꿈을 좇아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그냥 내가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 말고 나도 남들처럼 돈 따지고, 복지 따지고, 안정성 따졌으면 좀 달랐을까.


명문대를 졸업한 고등학교 동창들  대학에서 학부 전공으로 석사까지 밟아도 전공을 살려 취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거나, 전공 분야 일을 하는 중이지만 이직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꿈을 좇았고,  한번도  틈없이 수학했으며 심지어  우수한 성과를  친구들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애초에 좋은 일자리가 없는 분야라면 내가 얼마나 우수하건 상관없이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엘리트가 꿈만 보고 받아 들이기에  직업들은 정말 택도 없는 조건들을 가졌다. 대한민국에서 그런대로 살아갈  있는 방법이 전문직 말고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니 다들 이런 저런 고민에 빠져있다. 누구보다도 꿈을 열정적으로 좇는 낭만파이지만 가진 선택지 자체가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혹자는 마치 우리 엄마 아빠처럼 '다 그렇게 살아', '원래 인생이 그런거야'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는 엄마 아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꿈꿨지 누구도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못한 삶을 살기를 꿈꾸지 않았다. 그건 비도덕적인 욕심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발전의 동력이다. 그런 욕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회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부모가 내 자식이 나보다는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자식은 다들 자기 부모보다는 잘 살 것이라고 믿고 살아갔다. 너무 당연해서 믿음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던 그 진보는 우리 세대에서 처음으로 역행했다. 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자식이 못 살 수도 있는 세대, 부모의 도움 없이는 뭔가를 시도해보는 것조차 힘이 드는 세대다, 우리가.


다 그렇게 살아가니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대체 학창시절에 어른들은 왜 꿈을 크게 가지라고 입을 모아 말했는가? 젊은 세대에게 이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소확행'이라는 태도는 우리가 일부러 택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대하고 확실한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이젠 거대한 행복은 꿈도 꾸기 어렵고 꿈은 커녕 현실도 불확실하니 어쩔 수 없이 소확행을 택한 것이다. 당장은 불확실해도 견디고 노력해 대가가 커질 수 있는 가능성만 있었어도 우린 소확행을 택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가능성마저도 희미해져 차라리 눈 앞에 있는 가장 확실하고 소박한 행복을 택했고, 그 뒤에 가려진 욕망의 거세를 애써 못본 척 한다.  


거의 모든 이가 꿈의 실현에 커다란 장벽을 느끼고 있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과도한 에너지와 시간, 돈을 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많은 이에게 해결되지도 못했다. 언제까지 이 고민을 해야할 지 알 수 없는 막연함,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의 부재, 버티고는 있지만 이미 염증이 날대로 난 쳇바퀴 직장 생활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우스갯소리지만 로또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짤방이 돌아다니는 시대에 낭만파로 살 줄 알았던 내가 직장인들이 한 주의 시작에 로또를 사는 심리를 이해해버린 것이 어느 때보다도 씁쓸하다.


어떤 이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애송이로 본다.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능력과 사회에서의 성공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냐며, 노력만큼 결과가 그나마 정직하게 나오는 건 학창시절이 마지막인 것도 몰랐냐고 누군가는 물었다. 그래, 난 몰랐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성적만 좋았던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 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노력과 실력, 재능, 인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내 친구들 모두가, 그리고 내가 알 지는 못하지만 성공할 자격이 충만한 젊은이가 이 대한민국 땅에 넘쳐난다. 그런 우리가 왜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나 들으며 그렇게 되기 싫어했던 회사원이 겨우 된 것에 안도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냥 꿈만 좇지도 않았고 현실과 타협도 했던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난 염세주의자는 아니기에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라는 말은 정말 못 받아들이겠다. 아직 애송이라 그렇고 그 옛날의 몽상가적 기질이 아직 덜 꺾였다는 무언의 시선을 항상 느끼지만 있는 힘껏 더 발버둥치려고 한다. 나에게 뾰족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 싫어했던 회사원도 겨우 되었다는 데서 멈추는 건 너무 화가 나는 일이니까, 그래서 분노하든 방황하든 좌절을 하든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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