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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Mar 25. 2021

튤립으로 살아남는 방법


엄마는 대체로 뭐든 자기가 하면 될 일이라고 넘어가주는 것이 많고, 타인의 삶과 비교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도 없지만 아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딱 한번 있다. 하지만 딱 하나 꼽은 것치고 나는 그것이 단점처럼 여겨지기 않았기에 처음엔 의아했다. 아빠의 단점이란 가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벤트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엄마가 말하는 이벤트는 별 것도 아니고 꽃 한 송이 들고 오는 정도이다.


중학생이던 나는 당시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꽃은 꽃일 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고 말텐데 그걸 사오는 것이 뭐가 그렇게 큰 대수라고. 그렇게 꽃이 좋으면 자기가 사오면 되는 거 아닌가? 이해는 못 했지만 지금처럼 날이 급속도로 따뜻해지던 날에 학교를 마치고 엄마에게 꽃다발을 사다드렸다. 그 날이 어떤 날씨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노란 프리지아를 샀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프리지아라는 꽃을 처음 알았고, 아무 날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꽃집에 간 것도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꽃집을 검색해 굳이 다녀왔다. 사실 중학생 때의 프리지아 꽃다발 증정은 그 날 일회성으로 끝났다. 그 이후로도 보통 날에 꽃집에 가는 건 과하게 간지러운 일이라 또 한동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랬던 내가 오늘은 그 누구에게 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집 안에 꽂아두기 위해 꽃집에 갔다.


꽃집 가는 길에 걸음을 잔뜩 늘어뜨려 남의 집 마당에 핀 홍매화 사진을 찍고 있는 아주머니를 흘끔 구경하고, 옛날 간판 달린 철물점 앞에 기대어 서있는 낡은 자전거를 필름 카메라로 찍듯 내 눈동자 안에 담았다. 약간 골목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꽃집은 가는 길에서부터 그런 정경들에 마음이 따수워진다. 고층 빌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곳을 지나면서 내가 왜 갑자기 꽃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를 알았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마냥 좋지도 않은 어떤 보통날, 불행하지 않음에 안도하지만 행복하지는 못함에 조바심을 느끼는 그 권태로움을 어떻게든 달래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를 더 구석진 곳으로 몰아넣기 전에 쳐보는 발길질이 불행하고 절박해보이는 건 또 싫어서 우아해보이는 꽃을 선택했다. 꽃집으로 가는 동네의 골목길에서 나는 그렇게 꽃 한 송이 가져다 주는 법 없다며 아빠를 원망하던 엄마를 이해했고, 엄마가 왜 별 것도 아닌 보통날의 프리지아 꽃다발을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따스해지는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마냥 좋아보이지만은 않았던 그 즈음의 엄마 표정도 기억이 난다.


꽃집에 들어간 내게 제일 먼저 보인 건 그 때처럼 프리지아였지만 이번엔 그 옆에 있는 다른 꽃을 선택했다. 다른 꽃에 비하면 잎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렇게 크지도 않은 꽃인데, 활짝 벌어져 자신을 과시하는 다른 꽃들과 달리 잎을 꼭 모아 자신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활짝 드러낸 다른 꽃에 별로 눈길이 가지 않아서 노란 천으로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망고튤립을 선택했다.


꽃집 아가씨는 내가 망고튤립을 선택하자 들가의 작은 맨드라미처럼 보이는 꽃을 배경꽃으로 추천해주었다. 집에 꽂아 놓을 것이라고 하니 그녀는 꽃을 테이프로 한번 모아 두르고, 신문지에 꽃을 싸주며 말했다. 요즘 날이 너무 따뜻해서 튤립이 금방 시들 수 있으니 매일매일 찬 물을 갈아주세요. 튤립은 너무 추워도 안 되고 너무 따뜻해도 안 되거든요.


사실 나는 프리지아 꽃다발 이후로 꽃집에 자발적으로 가지도 않았거니와 어쩌다 가는 경우에도 선인장을 먼저 살펴보는 사람이었다. 그건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내 곁에 두고는 싶지만 신경은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늘 선인장을 본 것 같은데 매일 찬물로 갈아주라는 말을 들으며 내 마음가짐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맨틱하려면 이렇게나 까다로워야한다. 너무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적정 온도를 늘 유지하면서.


신문지에 폭 감긴 망고튤립을 들고 걸어오면서 자꾸만 신문지 안을 들여다봤다. 세상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알 지도 못할 흔한 신문지 뭉치 사이에 내 낭만은 아직 숨쉬고 있다. 낭만을 포장한 신문지는 낭만을 세상으로부터 비밀스럽게 지키기라도 하듯 한없이 투박했다. 한 겹엔 화성으로 새로운 탐사를 시작한 인류의 희망이, 그 다음의 한 겹엔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알 수도 없이 혼란한 기득권 세력의 정치 다툼이 활자 속에 갇혀 있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를 반성했고 그 말을 직접 엄마 앞에서 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집까지 걸었다. 꽃 하나 사 들고 오는 날이 없다고 큰 일 나는 것은 아니지만, 꽃 하나 없는 인생이라면 큰 일이라고 할 만한 건 딱히 뭐가 있을까?


튤립을 화병에 꽂으려고 신문지를 푸는데 이들을 묶고 있는 테이프가 보였다.  테이프가 망고 튤립을 꾸민다는 명목하에 옥죄는 속박처럼 느껴져 얼른 그것을 끊어버렸다. 코를 가져다대니 튤립에겐 흙냄새가   이렇다할 향기가 없다. 하긴, 잎을 활짝 벌려 벌과 나비를 꾀일 화려한 유혹의 향기는 이렇게 수수하고 단정한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반드시  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생명의 상쾌함은 은은하게 퍼졌다.


화병에 꽂힌 튤립을 모양을 이리저리 다시 잡다보니 튤립의 잎이 어느새 벌어져 있었다. 이렇게 벌어지다가 시들고 잎이 금방 떨어지겠다 싶어 매일 찬물로 갈아주라는 꽃집 아가씨의 말을 실감했다. 그리 독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쉽게 져버리는 존재를 코 앞에 두니 내가 그 많은 꽃 중에서도 하필 튤립을 고른 말 못할 이유도 납득이 갔다. 튤립은 태초에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따뜻하지도 않은 땅에서 태어난 존재였을 것이다. 낭만적인 기후가 유지되는 땅이었을 것이고, 그 세상은 싸워서 자기 존재를 힘겹게 지켜야만 하는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바와 어찌 보면 같다. 원래 이상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우리또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튤립에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너무 춥거나 더워 자극적이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낭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세상에서 삶의 낭만을 간직하기란 그렇게도 어렵다. 우리는 너무 추워서도 너무 따뜻해서도 안되는 존재들인데 이 세상은 너무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니 살아남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잎이 너무 벌어져버린 튤립을 다시 살리기 위해 튤립을 냉장고 안에 잠시 넣어두었다. 얼마 후에 꺼내보니 튤립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처음처럼 새초롬하게 자신을 노란 천으로 탄력있게 동여매고 있다.


뭐가 두려운지 자신을 꽁꽁 감싸고 세상의 혹독함에 쉽게 시들기도 하지만 조금 숨쉴 틈을 만들어주면 튤립은 또 이렇게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세상은 더이상 낭만적이지 않아 슬프지만 이젠 오늘 하루 힘들었던 것은 내 존재가 태생적으로 너무 낭만적이기 때문이라고 믿으려고 한다. 어느 날은 햇볕을 쬐고, 어느 날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된다. 번거롭지만, 낭만을 간직하기란 원래 어려운 것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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