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유투브 플레이리스트

1. 개그콘서트가 폐지된다고 사람들이 격세지감을 외치던 즈음이었다. 유투브 시대가 열린 지 오래고, 방송국 파워가 눈에 띄게 줄어든 대세의 흐름을 도무지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이 나서서 성토했다.

2. 아빠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요일 밤 이태선 밴드 음악이 나올 때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아, 내일 학교 가야 돼!' 소리를 지르는 동안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빠는 내일 회사에 가야하는 것이 아쉽지 않은 걸까 궁금증을 자아낼만큼.

3. 개콘에 관심은 있으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아빠는 개그콘서트가 폐지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린 것은 요즘 세상엔 너무 당연하다고 운을 띄웠다. 사회 이슈 프로그램에서나 다룰 법한 개인 방송 시대와 온라인 매체로의 전환을 시사적으로 논하려고 하는 건가, 싶었지만 우리 아빠가 그럴리가 있나.  

4. 아빠는 사람들이 개콘을 더이상 보지 않는 이유로 유투브를 꼽았다.

- 유투브에 재밌는 게 많지. 그러니까 아무도 개콘을 안 보지.

- 재밌는 거 어떤거요?

아빠에게 재밌는 거란 대체 뭘까 생각하는데 아빠는 뜬금없이 '강아지, 고양이'하고 중얼거리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왜, 그런 자연적인 비디오.

5. 진짜 잉여시간이나 심난한 세상사로부터 등 좀 돌리고 싶어서 보는 강아지 고양이 영상을 아빠가 본다고? 게다가 아빠가 말하는 그 '자연적인 비디오'라는게 대체 뭔지 궁금해서 아빠의 유투브 플레이리스트를 뒤져봐야겠다고 못된 결심을 했다. 이미 엄마의 유투브 재생기록을 뒤져본 전적이 있는 탕아에게 이런 또 한번의 엿보기란 하등 양심의 가책도 없다.

6.  

 시골 강아지 보고 가세요

연못을 만드는 데 찾아오는 동물들

노루새끼 울음소리

도시 어부 하이라이트

월척특급 기록갱신

나훈아 - 테스형

반도체 고점 아직 안 왔다

나는 자연인이다

7. 동물 방송은 나와 김지영도 자주 보는데 아빠와 우리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동물의 귀여움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상 뿐 아니라 낚시같은 동물 포획 행위(?)도 '자연적인 비디오'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왕년의 강태공 시절을 아직 못 잊었는지 평소에 낚시를 가지도 않으면서 그 놈의 자연적인 비디오로 주구장창 꿈을 꾸고 있다.

8. 아빠는 자연인이 되기만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에 다시 한번 고점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걸까. 내가 자식된 도리로 뭘 해야 아빠에게 월척특급을 선사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소크라테스형한테 물어보면 알려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