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이김 May 20. 2021

화장대신 글쓰기에 아침 10분을 쓰기로 했다


나를 어릴 적부터 알던 사람들은 내가 글쓰기에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를 좋게 봐주는 어떤 친구들은 내게 재능이 있다고도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기 보다도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하긴 했으나 그런 것치고 글을 쓰는 빈도는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빛처럼 스치고 지나는 영감의 순간을 기다렸다. 소싯적에 펜 좀 굴려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 영감의 순간이라는 것이 번쩍하고 지나갈 땐 내 자신에게 도취되지만 그 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기엔 그 분은 너무 드물게 찾아온다는 것을.


꼴에 또 욕심은 있어서 글쓰기를 취미의 영역에만 두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를 취미이자 '특기'로 만들고 싶었던 나는 영감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 위해 여행과 나들이를 자주 다녔다. 고독하게 자전거를 타고, 날씨 좋은 날 강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독서를 하던 청춘 만화 같은 시절도 있었다. 매번 섬광처럼 번뜩이는 시상을 얻진 못했어도 그 시절의 조잡한 메모는 오직 그 때만이 허용하는 풋풋함이 있어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것도 대학생 신분이 마지노선이고,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그럴 시간이 없어지자 진짜 암흑기가 도래했다. 여전히 글쓰기에서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나는 영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단조로운 직장 생활 속에서 금방 좌절해버렸다.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은 이런 여건 속에서도 영감을 찾아낼 것이라며 상상 속 비교 대상과 끊임없이 나 자신을 비교하다가 먹고 자고 스트레스 받고를 반복하는 내 자신에 질려버렸다. 한 때 글쓰기를 취미 이상으로 계발하고 싶었던 내 열망이 초라해질 정도로 나는 글을 쓰지 못했고, 그 때부터는 글쓰기가 취미라고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 시기는 무려 몇 년이나 갔고 나는 아무도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홀로 절필을 선언했다.


하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쉽게 접어지면 어디 그게 마음인가. 절필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울적한 감정이 치밀어오르고, 그것이 바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헛된 펜질을 몇 번 해보았으나 조금 그러다 말았다. 절필한 뒤로 내 능력은 그마저도 더 줄어들었다. 혼을 잃어버린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마냥 쓸쓸해하면서 살다가 뜻 밖의 경우로 나는 해방을 맞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주변인들을 보며 좋은 습관을 하나씩 들여간 덕분이다.


건실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은 저마다 좋은 습관이 있다. 누구나 닮고 싶어 하고 그 방법을 알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실천이 어려운 것들이다. 다독가인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책을 가방에 가지고 다녔고, 실제로 한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여러 권의 책을 조금씩 동시에 읽었다. 다른 친구는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기록했다. 시간이 없어서 글의 분량이 그렇게 길지도 못했고, 경험과 감상을 온전히 담아내진 못했지만 어쨌든 자주 했다.


영감에 대한 내 집착이 깨진 것은 이 친구들의 좋은 습관을 옆에서 보며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무겁게 책을 왜 들고 다닐까 했던 친구는 책을 가까이에 두었기에 책을 곁에 두지 않은 사람보다 독서를 더 많이 했고, 글의 길이나 수준이 어떻든 매일 꾸준히 기록한 친구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쓰면 된다며 매일 미루었던 나보다 더 많은 글을 썼다.


나중에 제대로 해야지,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늘 그렇게 생각했지만 준비가 된 나중이라는 것은 정말 몇 번 오지 않았다. 극도로 드문 그 경우를 '영감'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늘 그 때를 기다렸지만 한번에 집중해서 한번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글이란 거의 없었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수없이 초고를 쓰고, 그것을 매번 고치다 질려서 더이상은 손을 못 보겠다 싶을 때까지 인내하는 과정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서야 잘 되든 못 되든, 오늘 컨디션이 좋든 안 좋든 일정 시간 반드시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루틴 만들기의 일환으로 지난 주부터 화장하는 데 쓰이는 10분을 글쓰기에 투자했다. 어디 자기계발서나 텔레비전 명사 강연에서 나올 법한 건실한 자기 의지로 아침에 일과를 하나 더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 일찍 일어나는 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늦게까지 눈이 말똥한 올빼미도 아닌 그냥 잠만보다. 그런데 지난 주 딱 한번 저녁 늦잠을 자고 일어나 또 얼마 안 있어서 푹 잤더니 자동으로 아침에 눈이 빨리 떠진 날이 있었다. 그 때 준비가 빨리 끝나서 어제 빨리 잠들기도 했으니 한 10분 정도 글을 쓴 거다.


그런데 어라? 이 때의 집중력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좋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침에 분주한 가운데 낸 시간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긴장되어있고, 특정 시간이 되면 지체없이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비록 잠만보가 저녁까지 선잠을 자다 발견한 요행이긴 하지만 그 집중하는 느낌, 그리고 짧은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결과물이 괜찮은 것을 보고 내일 한번 더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보니 어떤 날은 아침에 40분 동안 글을 쓰다가 간 적도 있다.


아침 식사도 근근이 하는 내가 그 빽빽한 아침 시간을 비집고 글쓰기를 하나 끼워 넣었다면 성공할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애초에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아침에 해야할 일 중 필수적이지 않은 한 가지를 제거하고 그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한 것인데 그 느낌이 참 좋다. 이제 나한테 화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하나 안 하나 내 삶의 질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강제성 없이 싹튼 자발성이라서 그런지 하루씩 늘려나가다가 벌써 몇 주째에 접어든다. 누구는 할 것 다 하면서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데, 난 그런 사람은 못 되니 내 계획은 적당히 현실적이고 타협점도 명확하다. 플러스를 할 수 없다면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이너스 시키는 것도 한 요령이다.


엄마는 그래도 아가씨가 화장은 해야 된다고 하는데 글쎄다. 아침에 화장대신 10분동안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푸릇푸릇한 청년이니까 가능한 것 같은데.


매거진의 이전글 유교걸과 유고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