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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May 23. 2021

우울할 땐 프랑스 영화를 봐야한다


벌써 그게 지난 주 주말이었을 것이다. 어쩜 이렇게 지독히도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 실로 오랜만에 감당이 안될 정도로 깊은 부정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졌다. 이것을 그냥 '우울감'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냥 기분이 좀 처지는 무기력한 느낌이 아니라(우울감의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소 내가 우울감이라고 칭하는 감정은 이 정도이다.) 그 감정이 공격적으로 나를 축구공마냥 드리블하다가 저 심연 속으로 차 넣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결사적으로 다시 올라가려고 하면 내 머리를 즈려밟고, 위에 있다는 위치적 이점을 이용해 아래에 있는 나를 내리 눌러 다시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도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압도적 힘에 눌려 전의마저 상실한 나는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평소에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생리탓을 하면서, '이건 다 호르몬 때문이다'를 염불처럼 외기까지 했지만 그마저도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여성분들이라면 대부분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생리 때문이라고 갖다 붙이는 일 중 진짜 생리 때문에 그 일이 화가 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그 일 자체가 원래 짜증이 나는데 생리 기간의 호르몬 변화가 그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 뿐이다.


이런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이겠는가? 그냥 오늘 나 통제불능을 외치며 항복하고 드러눕는 게 낫다. 주말에 하려고 세워놓은 계획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오늘 내가 죽으면 그 모든 계획도 다 소용없다. 항복의 첫 신호로 이번엔 창작말고 감상과 수용을 해야만 했다. 내 맥북에 늘상 켜져 있는 새하얀 연습장인 마이크로 워드, 애플 페이지, 혹은 브런치 임시저장글을 다 꺼버리고 왓챠를 켰다. 그러고보니 왓챠나 넷플릭스나 다 새까만 화면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영화관에서 집중하기 위해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창작은 새하얀 백지 위에서, 감상은 새까만 소굴에서.


내가 첫번째로 왓챠에서 켠 영화는 너무 유명해서 쓰기도 미안한 <아멜리에>였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막상 고르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옛날에 멋모르고 봤을 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줬던 기억이 나서다. 정확한 스토리는 기억이 잘 안 났지만 보고 나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았기에 재생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에 힘입어 그 이후로 프랑스 파리 배경의 영화를 줄줄이 보게 될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아멜리에> 속 인물들은 다 하나같이 외롭고 고독하다. 심장병이라는 오해를 받아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주인공 아멜리는 요즘 기준으로 슈퍼 아웃사이더의 삶을 산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도 없고, 친구를 만드는 데도 관심이 없는 아멜리는 혼자만의 시간 동안 공상을 하면서 지낸다. 아멜리는 그 시간을 굉장히 사랑하며,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돈을 벌기 위한 적당한 사회생활만 하고 산다. 아멜리의 이웃엔 아멜리만큼이나 고독하고 괴짜스러운 면을 가진 이웃들이 사는데 그들의 고독함에는 알고보면 다 사연이 있다. 아멜리가 남몰래 그들을 돕는 가운데, 외로운 아멜리에게도 가슴 뛰는 상대가 나타난다.  


외롭고 고독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아멜리와 이웃들을 보면 어딘가 이상하고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까불거리는 동생처럼 미워할 수가 없다. 아멜리가 운명의 상대를 처음 발견하는 장면에서, 그러니까 지하철역 즉석 사진 부스로 다가갈 때 그 옆엔 돌아가는 LP판을 들고 서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도 아멜리의 이웃들처럼 이별을 겪었고,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수 있다. 이별을 말하는 노래를 틀며 눈이 보이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하게 턴테이블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영화 전개상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그 할아버지도 거리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음악소리가 너무 구슬펐던 나는 가슴이 쓰라려지는 물리적인 통증을 견디다 못해 항상 내 침대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곰인형에게 달려가고 말았다. 폭신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 곰인형을 끌어안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난 지금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영화 <아멜리에>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한결같이 동화처럼 엉뚱한 분위기를 유지하기에 울 만한 장면은 딱히 없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이 영화 속 인물들만큼이나 외롭고 고독한 처지라면, 고독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그들의 생활 공간이 그저 슬프게 보일 수 있다. 내 집에 방치되어 있던 곰인형과 같은 물건이 몇 개나 더 있을까 그제서야 세어보면서 말이다.




사실 저 날 이후로 내 기분은 완전히 풀리고 그 부정의 구덩이에서 냉큼 나왔지만, 오래 전에 갔던 파리에 대한 향수때문인지 파리가 배경인 영화를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찾은 작품이 감독의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매번 보기를 미뤘던 미셸 공드리 감독의 <무드 인디고>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무드 인디고>는 <아멜리에>보다도 더 엉뚱하고 공상적인 영화다. 공간적 배경은 파리이고 시대적 배경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선 초현실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당장 저 스틸컷만 해도 결혼을 결심한 남녀 주인공이 성당에 갔더니, 신부가 지금 결혼을 하러 온 커플들 중 경주를 하여 1등을 한 커플만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하여 경주를 하는 장면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우주선같이 생긴 기구를 타고 파리 허공을 둥실둥실 유영하거나,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처럼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디스코 댄스를 추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니 시종일관 색감은 파스텔 톤이고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이 파스텔 톤의 화면은 어느 순간부터 색을 하나씩 잃어간다.


<무드 인디고>는 <아멜리에>와 같은 즐거운 엔딩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 과정이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서 안타깝지만 그 과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공상 과학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일들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영화 속 공간을 잘 구현해서인 것 같다. 그와 그녀가 아주 우연적으로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이별을 해야하는 방식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망의 마지막은 앞선 두 작품만큼 네임밸류가 높진 않지만 모자란 만큼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별다른 이유 없이 왓챠에 '파리'를 검색했을 때 나왔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은 파리 배경의 다른 작품을 몇 개 더 봤는데 별로 좋진 않았다. 한국어 버전으로는 <파리에선 로맨스>라고 아주 매력없이 이름을 지어 놨는데, 원래 제목은 여자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멜리에>나 <무드 인디고>처럼 특색 있는 제목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배우 지망생으로 파리에서 십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엠마. 35살 생일을 앞두고도 여전히 꿈은 멀기만 하고 현실은 그런 엠마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굳건하기만 하다. 지쳐버린 엠마는 자신의 생일날 죽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 나간다.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간 장의업체에서 엠마는 장의사 알렉스를 만난다.


이 영화는 앞선 두 영화처럼 동화적이거나 공상적이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35살 생일이 다가오자 기뻐하기는 커녕 '35살이란 나이는 여배우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라고 엠마가 말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의 벽이 유독 심한 한국과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생업을 위해서 엠마는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데 이달의 판매왕에 선정된 엠마의 사진이 매장 내에 크게 걸린다. 그것을 보고 엠마는 TV를 팔고 냉장고를 파는 것을 꿈꾸었던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며, 돈 벌려고 하는 일에 무슨 요란을 떠냐고 화를 내버린다. 이 영화에선 현실적인 어려움을 굳이 은유하지 않고 주인공의 행동으로 정직하게 표현한다. 엠마는 화를 내고, 연기 수업을 중단해버리고, 자살 준비를 하고, 죽기로 결심한 전날 밤 클럽에서 남자들과 춤을 춘다.


엠마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가 기분이 몹시 나빴던 지난 주 주말을 이겨내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비슷했다. 꿈은 항상 소중하고 나를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잡히지 않는 꿈은 되려 파괴적이다. 애초에 꿈에 연연하지 않았다면 꿈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겠지만 그게 잘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저것을 다 해보다가 결국 잘 안 되어서 두 손 두 발을 들어버리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했던 것들이 결국 하루 더 살아볼 용기를 준다. 꿈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건 맞는데, 내 인생에서 꿈이 전부는 아니다. 꿈이 나를 배반할지라도 오늘 하루는 살아갈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거짓말처럼 꽁꽁 얼어있었던 마음 속 빙하가 녹았던 그 날과 닮아있다.  




부정의 구덩이에서 나오는데 프랑스 영화의 도움을 받았기에, 나는 이제 멀쩡한 정신으로 긍정의 멘트를 일기장에 쓴다. 이런 심적인 위기는 이번 한번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번 찾아올 것이다. 그럼 그 때마다 부정의 구덩이에 빠지거나 혹은 빠질까봐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그런 날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마음이 괜찮을 때 미리 준비를 해놓기로 했다. 그래서 우울할 땐 프랑스 영화를 봐야 한다. 세 편의 영화를 볼 때 내 심적인 상태는 각각 달랐지만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공상적인 영화든, 현실적인 영화든 프랑스 영화를 보면 '살면서 그렇게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멜리에>의 이웃들처럼 서로 단절된 채로 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삶은 <무드 인디고>처럼 어느 날은 좋았다가 어느 날은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종종 잊으며, 꿈은 존재만으로도 가슴을 벅차게 하지만 <파리에선 로맨스>처럼 꿈은 당신을 배반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너무 문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크게 괴로워 해도, 그래서 이상한 짓을 하고 말아도, 혹은 시체처럼 누워서 지냈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세상에 쉬운 인생 없고, 문제 없는 사람은 없으며, 프로이드도 말했듯이 우리는 평균적인 의미에서 보통이지 사실 어디 한 구석 쯤은 다들 이상한 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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