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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un 10. 2021

내 입 속의 유지장치


약 2년간의 치아 교정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해요. 실컷 이렇게 다 교정해놓고 이 유지장치를 안 껴서 이가 다 돌아간다고. 그러면서 간호사 언니가 파란 통에 담긴 틀니같은 것을 주는데, 그게 얼마 전 이를 본 뜬다며 흐물거리는 액체를 꽉 물어보라고 한 이유였다. 교정된 치열을 본떴기에 여기서 치아가 조금만 움직여도 꽉 조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유지장치를 하지 않으면 이는 언제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언제까지 껴야 돼요?

언제까지라는 건 없어요. 평생 해야 돼요.


간호사 언니가 가르쳐주는 대로 똑딱, 소리를 내며 유지장치를 입 속에 넣고 맞추어 보았다. 그 때는 그렇게 꽉 조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 산뜻한 느낌대로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지켰다. 이제 교정도 끝나고 주기적으로 치과를 찾아올 일도 없으니 이 단계에서 많이 해이해진다는 말을 듣고 남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컸다. 치열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이 간단한 것을 안 지킬까. 양치를 하고 매일 밤마다 끼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이것은 고통을 감내해가며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하게 정렬하는 과정도 아니고, 단지 '유지' 장치일 뿐인데.



그리고 나는 오늘로써 3일째 이 유지장치를 입 속에 끼워 넣으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유지장치가 들어가긴 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할 판이다. 정말 안일해져버린 사람은 아예 유지장치가 들어가지도 않아 결국 치과에서 혼이 나는 수 밖에 없다. 처음 입 속으로 쏙 들어가 가뿐하게 치열에 끼워지던 산뜻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여기저기 꽉 끼는 느낌에 해이해져 있던 이가 이제서야 허리띠를 졸라매고 굼뜬 몸을 움직인다.


그 진동이 실시간으로 잇몸에서 느껴지는데 치아 교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온 세상이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이 느낌을 잘 알고 있다. 흐트러진 치열에 유지장치를 처음 끼워 넣을 때는 소리를 낼만큼 아프고, 일단 유지장치가 끼워지기만 하면 그런대로 버틸만은 하지만 잇몸 전체에 기분 나쁜 뻐근함이 열심히 크로스핏을 한다. 지치지도 않는 이 뻐근함에 지난 3일 소중한 저녁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해 차라리 잠을 택했다.


오늘 저녁 양치를 하고 입 속에 유지장치를 끼워 넣으면서, 나는 몇 년 전 어찌 그렇게도 자신만만했던가를 생각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안일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를 곰곰이 되뇌이다가 갑자기 억울해졌다. 치아교정을 한 것이 20대 초반 대학생 때였으니 그 때부터 20대 후반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나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안일하게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살았다!


매일밤 끼던 유지장치를 하루 이틀 정도 뛰어넘던 최초의 날로부터 유지장치도 근근이 들어가는 오늘의 사태가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그 날이었을 법한 장면으로 떠오르는 인생의 조각이란 열이 받아서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 미친듯이 걷고 돌아와 세수만 하고 쓰러져 잠든 그런 모습들이다. 다른 후보들도 굳이 상세히 기술할 필요도 없이 그와 비슷한 결의 장면들이다. 내일이 오는게 너무 싫어서 술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서 달달한 술을 마셔버렸다던가, 아니면 이렇게 소중한 퇴근시간에 잠을 자는게 아까워서 드라마를 보다가 날을 다 새버렸다던가 하는 장면들이다.


대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여러 사회적 압박을 견뎌가면서 저런 하루 이틀의 일탈을 허용하다가 어느 날은 매일 밤 유지장치를 껴야만 한다는 사실이 구속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단 한번의 일탈이 이렇게나 무섭다. 그 한번으로 큰 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결국 하루가 이틀, 일주일이 되고 몇 달이 되기도 한 것이다. 사실 요 며칠 새 말고 마지막으로 유지장치를 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유지장치조차도 제대로 안 껴서 이가 돌아가버린 안일한 사람들을 한편으로 깔봤던 대학생 시절의 나에게 이젠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그 때가 사회인으로서의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애송이의 치기라는 생각과 함께 가지런한 이 모양을 위해 유지장치를 끼는 것을 크고 중대한 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시절에 대한 향수도 느껴진다. 이제는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기는 커녕 원래 해놓은 것도 유지하기조차 벅찰 지경이다. 원래 있던 것을 유지하지도 못해서 이렇게 절절매다니. 이제보니 치아만큼 자유로운 것이 또 없다. 끊임없이 유지장치를 해주지 않으면 그는 언제든 움직여서 도망을 간다. 치아는 몸무게만큼이나 자유롭게 달아나기를 꿈꾼다.


그의 비행과 일탈을 이젠 더 눈 감아주면 안될 것 같다. 구속이 싫다는 핑계로 하루이틀 모른 척 했더니 결국 그의 자유가 날 아프게 한다. 그만을 바라보고 있을만큼 한가하던 예전의 대학생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당장 오늘밤 해야할 일과 또 내일 해야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기도 바빠서 이젠 자유라는 미명 하에 그를 봐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를 내 곁에 꽉 붙들어 매고, 또 다른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하게 정리할 타이밍이 왔다. 유지를 잘해야 다음 것도 교정을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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