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집에서 살과의 전쟁을 제일 먼저 선포한 건 우리 동생이었다. 이 갑작스런 전쟁은 동생이 어느날 다이어트 식품을 한가득 배송시켜 냉동고에 채워 넣으면서 시작되었다.
2.
하지만 처음엔 엄마 아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로 시작하는 모든 항변을 웬만하면 다 들어주기 때문에 먹는 문제에 대해서 아주 관대했다. 그래서 어떤 조금의 핑곗거리만 있어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며 맛있는 것을 먹고야 말았다.
3.
고향에 내려와보니 어찌된 일인지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합심해서 다이어트 중이었다. 반강제로 시작한 다이어트 캠프가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작년의 해외 생활 동안 주로 밀가루를 먹어 살이 많이 붙었고, 이걸 어째야할지 고민만 하고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았었다.
4.
사실 동생은 날씬한데 원래 있는 놈들이 더한지라 나보다 더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기어코 48kg의 아이돌 몸매를 가져보겠다는 심산이다. 거의 목표달성을 눈 앞에 둔 동생은 나에게 코끼리라고 했다.
5.
동생이 아무리 뛰어봤자 우리집 식단을 꽉 잡고 있는 엄마가 동조하지 않으면 쉽게 망했을 텐데, 엄마가 더 나서서 샐러드를 먹자고 열성이었다. 왜그런가 하니 엄마의 동네 절친이 최근에 그 방법으로 8kg을 감량하셨다고 한다. 거기서 엄마는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6.
그래서 연일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나는 샐러드를 먹으면서 매번 이런 말을 했다.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 꼭 이렇게 살아가야만 해요?
-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잖아요.
- 복 중에 최고 복은 식복이에요.
7.
그러자 엄마는 갑자기 우리집 가훈을 바꿨다고 했다. 뭐냐고 하니 ‘덮어놓고 먹다보면 돼지꼴을 못 면한다’ 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문구는 어디 70년대 산아 제한 정책을 표절한 흔적을 지울 수 없으며, 우리집은 애초에 가훈이 없다.
8.
대신 내가 배고프다고 우기는 바람에 샐러드에 추가되는 재료가 많아졌다. 샐러드는 나날이 화려해져서 사실 이제는 샐러드 좀 그만 먹으라는 말을 듣는다.
9.
이젠 샐러드가 너무 맛있어서 정말 큰일이다. 또 조만간 양상추를 사야한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 ‘라고 늘 생각하면서 동생이 사놓은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을 몰래 퍼먹는다.
10.
난 덮어놓고 먹은 것은 아니고 숨어서 먹은 것이니까 돼지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