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어머니, 아버지가 에어컨 좀 틀자는 자식의 성화에 늘 하는 말처럼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와 ‘우리집 정도면 시원하다’라는 열 뻗치는 말을 들었다.
2.
그런 말에 인내심을 더욱 잃는 것은 우리 동생이다. 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중학생 때까지도 에어컨을 켜면 북극곰이 죽는다고 울먹거렸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동생보다 에어컨 없이 더위를 견딜 의사가 더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동생은 혼자 있어도 에어컨을 켜고 나는 혼자 있을 경우 절대 켜지 않는다.
3.
전체적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가족의 분위기로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있다. 우리집의 에어컨을 틀기도 싫고, 그렇다고 열사병 직전으로 늘어져 있기도 싫은 우리 가족은 제 3의 길을 택했다.
4.
먼저 동생이 생전 하지도 않던 공부를 한다고 집을 나서버린다. 우린 걔가 공부를 한다며 그렇게 일찍 나가는 모습을 살면서 본 적이 없다. 안하던 공부를 (가장한 무언가를 시원한 카페에서) 하고 싶을 정도로 집이 더운 것이다.
5.
동생보다 더위에 내성이 강한 나는 일주일에 한 두번 꼴로 가장 더울 시간이 오기 직전에 집을 나섰다. 내 고향 경상남도에는 8월 동안 확진자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고 있던 때였다. 나는 ‘쉬러’ 스타벅스에 간다고 말했다.
6.
내가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이 더운데 어딜 나가노?’, ‘거기까지 가는게 더 일이다.’라며 엄마는 나를 만류했다. 그럴 때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새로이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는 곳에 내 돈 주고 합류하겠다며 뿌리쳤다.
7.
그런 와중에 집 바로 앞에 24시간 무인 카페가 생겼다. 주문 및 제작을 기계로 해야하는 까닭에 엄마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음을 빌미로 많은 불만을 표시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런 숭악한 운영 방법을 쓴다고 말이다.
8.
시간이 좀 흐르고 난 후, 가장 더운 시간 때에 엄마가 말도 없이 홀연히 어디론가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4시간 무인 카페의 맨들한 새 유리창 너머로 엄마는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동네 친구와 열심히 떠드는 모습을 내게 들켰다. 물론 그 모습도 스타벅스 가는 길에 봤다.
9.
그 후 오직 아빠만이 왜 이 더운 날 굳이 커피집까지 가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엄마는 예전처럼 거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나무람은 아무런 권위가 없다. 아빠도 가장 더운 시간보다도 1시간 전에 회사에 가버리기 때문이다.
10.
아마 아빠도 회사에 가자마자 커피를 타 먹으며 거기가 천국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가장 더운 계절, 가장 더운 시간, 우리 모두는 더위를 피해 커피로 도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