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은 죽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꽤 오랜만에 맞이한 한가로운 나이트 근무다.
중환자도 없고, 별다른 이벤트도 없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 하품이 나왔다.
지루함과 무료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잠을 잘 못 자고 출근한 탓에 눈꺼풀이 한없이 쳐진다.
졸음을 깨우기 위해 다시 고쳐 앉았다. 차분히 앉아 환자들의 의료 기록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환자 이력을 보고 있는데 문득, 환자 정보를 아주 기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 모든 환자가 다 거기서 거기인 환자들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환자와 인간적인 교감을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았다.
종양이 뼈로 전이되어 느끼는 통증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고서도,
이젠 마음이 아프다거나 하는 감정이 동하지가 않았다.
단지 수 없이 경험한 누군가의 '통증'은 그저 내가 해결해야 할 '일'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기력 없어 보이는 어느 말기 암 환자의 모습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늘 이 상태였던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아차' 싶은 지금 이 순간을 그냥 넘겨버려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내가 담당해야 할 열 세 명 환자들의 '과거력'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처음 병원을 찾게 되었는지, 그때 어떤 증상을 호소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진단을 받고 그에 따라 어떤 검사와 의학적 처치가 행해졌으며 어떻게 이 상태로 간호사와 환자의 관계로 만나게 된 건지.
인간적인 시각에서 천천히 들여다봤다.
당연했던 사실이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암 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픈 환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간 나는 크나큰 착각으로 그들이 언제나 아팠던 사람들인 양 바라봐 왔고,
그래서 결국 간호하는 일을 지금처럼 무료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다행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이곳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이 간호 일에 무료함을 느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환자들의 과거력을 주위 깊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지 어느 순간부터 입안 통증이 지속되어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던 스물둘 학생이었다.
단순한 염증 때문인 줄로 알았는데, 조직 검사 결과 '악성' 이었다.
혀에 악성 종양이 있었던 것이다. 설암 절제를 해야 했고,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에는 갑작스러운 출혈로 인해 쇼크가 와서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다.
동시에 혈전이 뇌혈관에 생겨 사지의 운동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가 약물 치료와 재활치료로 회복을 했고,
항암 치료를 위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몇 달간의 지속된 입원 치료 중이었다.
30대 중반의 또 다른 '그'는 타 병원 외과 의사였다.
그는 한 달 여전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고 음식을 삼키는 것에 불편감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위내시경을 통한 조직 검사 결과 '악성'이었고, 말기였다.
진단받은 지는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삶은 애석하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악성 종양은 요도로 전이되어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게 막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항암 치료를 진행한 뒤 퇴원 예정이었는데,
환자는 빨리 퇴원하기를 바랐다.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또 다른 '그'는 40대 초반인데,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 별 이상 없다는 결과를 받았었다.
추락 사고를 겪고 나서 한참 동안 시간이 흘렀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자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다양한 검사 결과 '암'일 가능성이 높아 원발 부위를 찾기 위한 조직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국은 근육에서 악성 조직이 나왔다.
이미 뼈로 전이가 진행되었고, 그로 인한 통증 때문에 하루 종일 누워 지내야만 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쓰면 쓸수록 동시에 부작용도 같이 나타나 무작정 증량할 수가 없었다.
그 또한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맞이한 것이었고, 충격을 가라앉힐 시간도 없이 참을 수 없는
통증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 외 십여 명의 환자들 각각의 과거력은 제각각이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 환자가 아니라, 개별적인 사람들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배가 아파서, 구토가 지속돼서, 검은 변을 봐서 등등 각기 다른 증상들로 병원을 찾았다.
그 증상들의 원인이 바로 '악성 종양' 이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으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으리라.
저마다 외줄 타는 심정으로 삶의 여정을 걷고 있었다.
'항암치료'가 필요해서 혹은 말기 암으로 인해 나타나는 수십 가지의 증상들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에 입원해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간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간호사인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이들을 다분히 '일'적이고 기계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가능하다면 피해야만 한다.
상투적일 수 있으나, 그들은 '환자이기 전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만 하는 게 맞다.
나는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성찰의 하루가 끝나고 퇴근하는 길, 한 환자가 떠올랐다.
기억 속의 그 환자분은 화를 내고 있었다.
더 이상 당신에게 어느 의료진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의료진에 대한 컴플레인을 심하게 했던 그는 우리 사이에서 이상한 환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문득, 나는 그가 어쩌면 가장 솔직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이 내 상태를 좀 더 궁금해 하고, 먼저 물어봐 주기를, 자신의 요구 사항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현실에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깊은 유대감이 생기긴 힘들다.
그러나 의료진의 입장에서 최소한 눈앞에 있는 환자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지만 않는다면 어떨까.
내가 바라는 건, 딱 거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