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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25. 2016

무엇이 나를 뛰게 만들었는가

내 삶에 대한 애정어린 집착,

#1.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다. 그냥 잠만 늘어지게 자고 싶은 날.며칠 전의 나와는 너무 다르게 느껴져스스로도 이질감을 느끼던 그런 날. 고픈 배를 컵라면과 마늘빵으로 채우고선다시 침대에 누웠다. 인스턴트 음식을 줄여봐야지, 했던 그 마음도 오늘은 없었다. 역시나 습관적으로 핸드폰으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타인의 삶을 뒤적거렸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지금 이렇게 침대에 누워 할게 없었다.그렇게 또 잠이 들었고 저녁 일곱시에야 눈을 떴다.여전히 나는 보드라운 이불 속에 폭 파묻혀 있었다.눈만 깜빡였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싶다던 내 바람대로 했지만기분은 별로였다.불과 몇 분 전에 꾸었던 꿈이었는지, 꿈이 생각났다.꿈 속의 난 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선생님, 전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처음엔 당당하게 말했었던 것 같다.이런 것에 관심이 있고, 이런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고.하지만 그 안엔 무수한 불안과 막연함이 있었다.

'제가 지금 이런 것에 관심 있어 하는데 괜찮을까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답을 얻고 싶었다. 믿음을 얻고 싶었다.

현실 속의 내가 그대로 꿈속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듯 차근차근 원하는 모습에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어떤 계단을 밟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었다.실은 밟고 싶은 계단이 눈앞에 보이지를 않았다.아니, 누군가가 밟은 적이 없어 실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내가 그 계단 하나하나를 만들며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 모든 게 너무나도 막연해서, 나조차도 막연하게 느껴서 다시금 의심하고, 작아지고, 도망가고 있었다.'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거짓말하며.그 꿈을 한참 생각하다가 한 숨을 나지막이 쉬었다.'나도 참 나지. 꿈속에서도 이러고 있네.'


#2.


꿈 때문이었을까,이리도 무기력한 오늘의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았다.꿈에서도 '나'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하고 있던 '나'를 그냥 이렇게 모른 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어떻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약 몇 초 후,반사적으로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고 오자.


벌써 바깥은 깜깜했고, 영하 18도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도 움직였다.그렇게 나는 밖으로 나갔다.성냥팔이 소녀처럼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싸맨 채로.


#3.


늘 천천히 산책했던 그 길목에 서서나는 어색하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발목을 돌리고, 무릎을 굽혔다 펴기도 하면서.그리곤 뛰었다. 숨을 두 번 들이쉬고 두 번 내쉬면서사실 나도 왜 이렇게 뛰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그렇게 숨소리에만 집중하며 뛰었다.뛰며 바라본 하늘엔 연한 금빛의 달이 아주 동그랗게 떠있었다.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괜히 위안이 되었다.달이 나를 바라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언제나 바라보면 '나 여기 있어-'하는 '달'이 오늘도 역시나 좋았다.그렇게 달빛 받으며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없어 너무도 고요했다.들리는 건 오로지 내 숨소리뿐이었고,거의 몇 달 만에 하는 운동인지라 숨소리가 너무 거칠게 들려왔다.그리곤 문득 눈물이 고여 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뛰게 할까.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은, 삶에 대한 집착이 나를 뛰게 하는 것 같았다.흐르지 않은 채로 고여있는 눈물은, 눈앞의 불빛들을 사방으로 번지게 만들었다.다시금 바라본 달도 여러 개로 보이게 만들었다.그렇게 난, 한참 동안을 여러 개로 번진 빛들을 바라보며 뛰었다.


#4.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뜀박질을 (뛰다 보니 힘들어 단어 선택도 거칠어졌더랬다)왜 하고 있는가, 란 질문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쉬지 않고 달리고 오자, 라 스스로와 약속했기에 융통성 없이 달을 사진으로 담으면서도 내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어쨌거나, 이렇게 답했다.


나한테 약속했으니깐.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단순했다.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단순했지만, 앞으로 살며 지켜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렇지만, 꼭 지켜내고 싶은 것이었다.


#5.


생각보다 빨리 지쳤다.삽살개가 물 위에서 발버둥 치듯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달렸을지도 모른다.때론 걷는지 뛰는지 구별이 안되도록 말이다.'아- 힘들어...'라 나지막이 홀로 읊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얼굴을 꽁꽁 싸매두었던 목도리도 풀어 헤치고, 장갑도 벗었다.어제는 너무 움츠리고 걸어 어깨가 아팠었는데...영하 18도의 한파주의보라는 '미친' 날씨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데느껴지는 것은 달랐다.


같은 환경일지라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리 느낄 수 있구나!


극한 환경도 내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겪어낼 만한 것'이 되는 것이었다.그래, 멈춰 서서 주저하지 말자. 움직이고, 행동하자.한 시간의 뜀박질이 꽤나 값진 깨달음을 주었다.


#6.


올림픽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금 기숙사 근처로 돌아와돌계단을 오르며 그제야 걸었다.계단을 올라선 후 천천히 걸으며 느껴낸 찬 바람이 마냥 싫지가 않았다.


그래, 나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구나.


이 느낌이 좋아서 한참을 멈추어 서 있었다.늘 살아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껴내며 살아가는 건그냥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살아있는 느낌을 느끼며 사는 삶, 그러한 삶을 내게 주고 싶다.


#7.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고 있음을 느낀다.글이 쓰고 싶은 마음을 따라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썼다.'하고 싶은' 이 마음이 이리도 소중하다는 걸오늘에서야 느꼈다.내일의 '난' 무얼 하고 싶어 할지,그 마음을 따라 움직여야지. 그 움직임들이 모여 만들어 갈 스물다섯, '나'의 이야기가 다시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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