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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Sep 23. 2016

울음을 참아 시큰한 채로 쓰는 글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1.


 약 한시간 전,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 병원 문 밖을 나섰다. 5일의 근무가 끝나는 날이다.

발걸음은 터벅 터벅, '아- 힘들어'란 혼잣말이 몇번이고 내뱉어졌다.

문 밖을 나서니 차디찬 새벽녘의 가을 공기가 '느껴졌다.' 


느낀다

나는 오늘 과연 이 '동사'를 몇 번이나 행했을까.

이 차갑고도 서러운 가을 공기를 느끼고 있는 자신이 어색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오늘 하루가 무언가 느낄 새도 없이 정신 없었는지.

과연 난 숨은 잘 쉬어내며 일했을까, 온 몸에 긴장감 한가득인 채로 일하진 않았을까.

허리도 발바닥도 업무 시간이 끝날 즈음에서야 아파오기 시작했었다.

갈증도, 배고픔도, 몸도, 마음도 느낄 새가 없었다.

단지 내겐 인계 시간까지 마치 미션을 클리어하듯 행해야 하는 업무들이 있었고

최대한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환자들의 호소가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버린 상태에서 혼잣말로 '이걸 먼저 하고 저걸 한 다음에...' 중얼거리며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보려 애썼지만, 결론적으론 '혼돈' 그 자체였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속도로 쫓기 듯 종종거리며 일을 했고,

몰아쉬는 숨이 한숨처럼 내뱉어지기를 여러번.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그 끝자락 새삼스럽게 퇴근길 맞이한 새벽 공기를 느끼고 있는 '내'가 이상스러운 그 순간이

괜히 서러웠다. 

허겁지겁 주린 배(아니 솔직히 주린지 안주린지도 잘 모르겠는 배)를 뒤늦게 채워내어 느껴지는 '불편감'도, 

시큰한 느낌으로 아파오는 '허리'도, 갑작스레 너무도 서러워 한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대체 오늘이 어떻게 지나가버린거지, 그렇게나 바빴는데 내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한 공허함과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펑펑 울고 나면 나을 것 같았지만, 이 캄캄한 새벽 길 한복판에서 그럴 자신은 없었다.

꺼억 꺼억 울음을 삼켜냈고, 목줄기를 따라 시큰한 서러움이 그저 서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반쪽이 되어있는 달빛 아래 터벅 터벅 거닐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지금의 내가 느끼는 바를 토해내고 싶은 마음에 잠은 미뤄둔 채로 글을 쓰기로 했다.



#2.


업무를 인계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고르쉬었었다. 

몸에 힘을 빼고선, 허공을 바라본 채로 잠시간 멈추었다.

그때서야 잊고 있었던 나라는 존재가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구나.. 이제야 알겠네

순간 두려웠다.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게,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채로 하루의 절반이 가버렸다는 것이.

이 환경 속에 있다면 언제든 또 겪게 될 이 '멘붕'적인 하루 하루가 

삶 속에서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나니 두려움이 더 선명해졌다. 


실은 잠에서 깨어난 오전까지는,

이틀 연속 나의 부주의로 인한 반복했었던 실수에 주눅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언제나 '잘하고 싶어하는 나'는 역시나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있었기에

실수 자체도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더욱이나 그 실수가 단순히 '나'의 범위가 아닌 '타인'의 범위까지 침범했다면 

죄책감이 극에 다다르곤 했다.  

바로 그러한 죄책감 위에 서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이틀을 보내온 날이었고 

어느 누구도 치워줄 수 없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가슴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아 버렸음을 

그냥 인정해버린 날이었다. 


겨우 줄타기에서 내려온 후, 

일을 시작하기전 간단히 생각을 메모했었다.

결국은 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외면하고 무시하거나 짓밟아버리는 비인간적인 태도는 반드시 피해야한다. 그래야만 실수를 단지 기분나쁘단 감정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건강한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글로는 쉽지, 실제론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우선 나를 조금 더 아껴줘야지 싶다. 


다시금 나의 역할에 책임감을 느꼈고, 진부한 '노력'이라는 것을 나의 태도에 새로이 새기는 것을 다짐했었다.

나와의 접점에 닿아있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최선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나서 보니

다짐했었던 바를 아로새기며 일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큰 욕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간의 의식할 수 있는 '공간 즉, 여유'의 뒤꽁무니도 볼 수 없었으니깐.


#3. 


다시금 묻게 되었다.

왜 너는 이 일을 하는가, 대체 왜.

그 '소명'이 네 가슴 속에 정녕 있는게 맞는건인가.

있다 한들,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 그만큼의 간절함이 실릴까.


끌려가는 하루를 살아가고 싶진 않다.

왜 하는지도 모르게, 그 어떤 의미도 느낄 여유를 잃어버린 채로 살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내게 필요한 것은 또 '어떠한' 노력일까.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터벅 터벅 힘없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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