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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08. 2016

특별한 존재이고픈.

산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어느 날의 기록

약 일곱시 십분쯤부터 고요하리만큼 캄캄한 어둠이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푸르른 새벽녘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3일간의 나이트 근무로 낮과 밤이 바뀌어 그 고요한 밤하늘을 창밖에 두고 조금은

요란스럽게 옆에 쌓아둔 이 책, 저 책을 읽고 난 후였다.

그리곤 날리는 글씨로 무언가 적힌 노트를 눈앞에 두고 펜을 든 채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펜으로 쓰고자 했던 것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나를 가장 살아있도록 하는 것, '그려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것.   

행동

작은 일련의 '행동'들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걸 찌릿하게 느끼고 있던 요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는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다. 

쉽사리 펜을 종이에 얹지도 못한 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답답함'과 '막막함'이 엉켜 나뒹굴고 있는 상태였달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아가 정말 하고 싶지만 그 '무언가'에 대해 명쾌하게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다음 물음엔 눈만 깜빡일 뿐.

이러한 나를 다시 바라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눈만 깜빡이게 했음을 깨닫게 된다.  

'대단한' 무언가를 '꽤나 멋져 보이는' 방법으로 해내야 한다는 올가미가 곁에 있었다.

그 곁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특별해지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며칠 전, 나라는 존재의 '평범함'이 받아들이기 벅찬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게 있을까.'

'다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바램이 과연 내게 가당키나 한 걸까.'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나 있으려나.'

'언젠가 비로소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주도적으로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

'남들이 그렇듯, 살아낸다는 것에 지쳐버리면 어쩌지.'

'훗날 돌이켜봤는데 이거 해볼걸, 저거 해볼걸,

후회스러우면.. 아-끔찍해.'

'나 하나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도 벌써부터 걱정되는데..'


장마철의 먹구름처럼 순식간에 뒤덮여버린 내 머릿속은 이미 천둥 번개도 몇 번 친 것만

같았다. 막막했고, 두려웠으며, 불안했다는 이 세 단어로 담아내기엔 꽤나 복잡스러운

먹구름들이었다. 이 먹구름들이 자연스레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 머릿속은 아직 자유롭지 못한 상태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도 자연스럽지 못했고,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나를 '특별하게' 만들 '특별한' 방법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꼴딱 밤을 새우고 나서야 찾아온 졸음 앞에 아이고, 반갑다 하며 침대 속으로 포옥 몸을

누워내지 못한 이유였다.

멀뚱 멀뚱 언제 어스름한 새벽녘이 찾아오나

창밖의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이유였다.


그래서 푸른빛이 하늘에 흩뿌려지기 시작한 일곱시 십분,  이럴 땐 산책이지, 하며

밖으로 나섰다. 겨울 패딩을 걸치고 목도리로 싸맨 후

새하얀 털이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로 말이다. 

그냥 문득, 복잡스러운 머릿속이 걷고 나서 한결 가벼워진다면 땡큐겠다 싶어

별생각 없이 걷자, 내게 말했다. 억지로 정리하려, 답을 내려 애쓰지 말자,

내게 말했다.


걷다가 멈춰 서기를 여러 번,

아침에 떠있는 은빛의 달에 홀로 반가워하던

나는 그냥 '나'였다. 그 달엔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요정이 두 다리 흔들며 걸터앉아 있을 것 같았다.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순백한 은빛이 좋아 수십 번 하늘로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곤 이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오묘한 아침의 하늘색 그리고 달, 나뭇가지의 선들로 그려낸 한 폭의 작품을.

그리곤 다시 한참을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한 마리의 새가 내 옆으로 날갯짓하며 지나가는 것을 멈춰 선 채로 바라보았다.

자연스러웠다,

그 날갯짓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전혀 힘들이고 있지 않아 보였다.

얼마나 힘을 주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날갯짓으로는 고작 몇 시간 후에

지쳐버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힘을 뺄 필요가 있음을, 자연스러워질 필요가 있음을 내게 건네고선 다시 걸었다.


겨울나무들이 양옆으로 서 있는 길에 들어서자 눈은 나뭇가지들로 향했다.

늘 나무를 보며 생각하는 거지만, 이파리도 꽃도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텅 빈 공간에

그려내어진 '선'들 같다.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모양새를 바라보는 것은 언젠가부터 내게익숙해진 행위였다.

여느 때처럼 멈추어 선채로 '와-'하며 속삭이듯 감탄하고 있었다. 

한그루 옆에 또 한그루 멀리서 보면 아니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앙상한 겨울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 걸로 보이겠지. 비슷한 높이, 비슷한 두께의 나무 기둥과 가지들이었고 사람으로 치자면 이란성 쌍둥이 정도로 표혈할 수 있는

두 그루의 나무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그려낸 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어 내고 있자 두 나무의 미세한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과연 누군가를 특별하다고 규정짓는 것이 가능한가



비슷해 보이는 두 나무도 찬찬히 들여다보니 각자의 특별한 점이 보이듯, 나도 나만이 지닌

특별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그 '특별함'이라고 하는 것을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니거나 유명세를 얻거나 혹은 명예로운 자리에 앉거나 한다는 것으로 과연 누가 규정지으려 하며,

왜 누군가 만들어낸 프레임으로 비추어보고선 무력해져 있었던 것일까.


아주 감사하게도 얼마 전 밑줄 그어둔 한 책장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나 다워지는' 과정 속에서 특별해진다는 것.하루 또 하루가 겹겹이 쌓이고 또 쌓이며
나는 더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렇기에 더 마음을 담아 순간을,
하루를 살아가고자 해야 한다는 것.
'누구보다' 특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이기에' 특별하다는 것을
마음 깊숙이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너무 고마운 이 깨달음에 '땡큐!'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산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 믿어본다.

내가 살아가고 그려갈 삶 속에서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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