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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orable Jan 07. 2020

그토록 슬픈 치매

“미숙이 왔어?” “미숙이야?” “미숙이는 언제와?”


방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 소리가 들릴 때 마다 그렇게 미숙이를 찾았다.


일주일 전 왔다간 미숙이였지만 그날따라 그렇게 미숙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잠결에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아침 일찍 울린 전화벨 소리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여보세요?”


“아...네 짐 챙겨서 내려갈게요.”


정확히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숙연한 목소리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서 전화를 받은 그날의 공기는 여전히 생각만 해도 차갑게 느껴진다.


급히 검정색 옷들을 챙기고 ktx표를 예매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보다 가면 어떤 상황일지, 나의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생각보다 모든 것이 담담했다. 눈시울이 붉은 채로 절을 두 번 올리고 향을 꽂아드렸다.

오랜만에 온 가족들이 모였다. 국밥은 애석하게도 맛있게도 넘어갔다.


어느 날부터 자주 할머니를 찾아뵀었다. 일상적인 인사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내게 같은 질문을 하셨고. 엄마는 그러려니 하라고 해서 나도 같은 대답을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다행이 나를 알아보셨고 나와 함께 있는 당신의 딸은 더더욱 알아보셨다.


맛있는 것도 먹고 목욕탕도 가고 어릴 때 보다 더 빈번하게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생겼다.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을 예고 한 것처럼.


어릴 때도 가끔 목욕탕을 간 기억이 있지만 그날따라 3대가 같이 목욕탕에 있던 시간이 기억난다. 그날 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목욕을 하는 것이 마지막일 거라는 것을. 마음속의 슬픔을 꾹 참고 더 열심히 챙겨드리고 함께 하려고 했다.


난 목욕탕을 좋아한다. 새로 이사가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목욕탕. 따끈한 탕에 나체의 몸을 담그면 모든 것이 스르륵 녹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나를 잠시 그 시간으로 데려가 준다.

조용했던 장례식장에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꿉놀이 하던 시절 때 보고 소식이 끊어졌던 막내 이모.

못 봤던 시간만큼 그녀의 울음소리는 깊었다. 시간을 되돌려 달라는 부르짖음 이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도 슬픈 날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은 반가웠다.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져있었고 우린 같이 소주한잔 할 만큼 커버렸다. 그렇게 손자들은 새벽까지 그녀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죽음으로 더 끈끈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당신을 보내는 마지막 길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행이 자식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울어주고 절에서 보낸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릴 수 있었다.


온 몸이 부서져라 낼 수 있는 울음은 다 쏟아 붓던 시간도 잠시 모든 것이 끝나고 다들 모여 앞으로의 우정을 다짐했다. 형제 자매끼리, 사촌들끼리 서로 못 보고 지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당장 동호회라고 결성할 만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할머니의 친한 친구분을 만났다. 친구분은 마지막을 아셨던 건지 그날 잠들기 전 마지막을 함께 했던 분이셨다.


“미숙아, 아이고 미숙아, 왜 이제야 왔니?”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왔어요, 마지막날 계셔 주셔서 감사해요.”


“미숙이 너를 얼마나 찾던지, 그날따라 너를 그렇게 찾더라고...”


미숙이는 몰랐다. 소식을 접하고 장례를 치르고 타오르는 불에 엄마의 마지막 물건들을 불태우고 화장터에서 그녀의 마지막을 통곡하며 보내고, 그리고 땅에 묻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마무리를 하고 형제들과 우애를 다짐하던 그때까지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지 못했다면 알지 못 했을 것이다.


그 많은 자식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다는 것을.


마음 굳게 잘 보내고 왔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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