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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마운틴 Apr 21. 2020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기억

세월호 6주기를 추모하며

잊고 있었다, 벌써 6년전의 일이라는 것을. 사느라 너무 바빠서라고 변명하기엔 죄책감이 들었다.


2014년 4월 16일은 내가 첫 아이 육아로 한참 씨름하던 때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육아의 막막함과 두려움으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조금이나마 생기를 찾기 위해 매일 아침 10시만 되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근처 아울렛에 출근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4월 13일이 아이의 백일이었으니 4월 16일은 정확히 생후 103일째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였고, 그날도 예외없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울렛을 누비고 다녔다.


아침에 채비를 마치고 나가기 전 TV에서 선박사고가 났는데 타고있던 승객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사람은 안 죽었으니 됐네' 라고 생각하며 아이와 외출을 했다. 평소엔 늘 아이와 단 둘이 다녔는데 마침 그 날은 대학원 진학으로 연수휴직 중이던 지인이 대학원 수업 때문에 캠퍼스에 와있어서 그녀를 만나서 함께 학교 이야기도 나누고 점심도 먹었다.


그녀와 네 시쯤 헤어지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뉴스를 다시 보니 왠걸... 상황이 심각했다. 처음 배에 이상징후가 느껴지고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라는 선내방송이 나왔을 때 학생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해맑고 혈기왕성한 모습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인솔교사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 3년전 2011년 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인문반 학생들을 인솔하여 설봉호라는 배를 타고 제주도에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이전까지는 주로 버스로 강원도나 전라도를 다녀오는 게 수학여행 코스였는데 일 년 전부터 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오는 걸로 바뀌었다. 첫해에 제주도를 다녀온 선생님들은 모두가 배멀미에, 밤새 배안에서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왠만하면 2학년 담임은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였으나 나는 결국 2학년 담임이 되었고 역시나 1박2일 배를 두 번이나 타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학생들만 타는 배가 아니라 일반 승객들도 다 같이 타는 배였기 때문에 밤 늦은 시간에는 갑판에 술취한 어른들도 꽤 보였고 망망대해의 열린 갑판에서 혹시나 학생들이 위험한 장난이라도 할까 교대로 보초를 서며 새벽내내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그때 당시 내가 맡은 반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수학여행 가기 직전에 방 배정에 불만을 품고 '내 말 안 듣는 놈들은 다 찔러버릴거야' 라는 발언을 해서 반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반장, 부반장을 불러서 아이들의 동요된 마음을 파악한 뒤, 나는 그 아이를 따로 불러서 몇 시간 동안 상담을 했고, 다시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부탁드렸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나는 이 상황이 더욱 걱정스러워 학년부장선생님께 이 내용을 보고했고 현장체험 인솔교사 회의에서 이 내용을 공유했다. 회의 결과 요주의 학생이 있는 상황에서 여자선생님인 내가 밤늦게 남자아이들끼리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게 불편할 수 있고 인권침해의 우려도 있다고 판단해서 급하게 학급별 방배정을 변경하여 우리반 학생들 방을 교사 방과 가까운 곳으로 옮겨서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현장체험학습은 무사히 끝났고 걱정되던 그 학생도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4박 6일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가 부산에서 제주를 왕복으로 이용했던 그때 그 설봉호는 그 다음해였나 다다음해였나 화재가 발생해 불에 타서 아예 운행이 중단되었고 이후로 제주도 체험학습은 항공편으로 가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처럼 교사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사고가 학교에서 또는 체험학습 중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내 방송에서 탈출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으니 나는 분명히 기다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반 아이들의 생사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적극적으로 구조하려는 노력조차 없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버린 아이들, 선생님들, 다른 승객들, 그리고 진실.



얼마전에 읽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이라는 단편집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는 교사인 남편을 현장체험학습 중 일어난 선박사고로 잃고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내의 이야기이다. 현장체험 떠나는 남편을 위해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뒀는데 정작 남편은 늦잠을 자 아침도 먹지 못하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고, 그런 남편에게 늦잠 잤다고 잔소리를 했던 아내는 그렇게 뛰어나가던 그 모습이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발인을 마치고 화장장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시어머니가 '그사람들, 어떻게 한 명도 안 올 수 있느냐' 고 화를 냈다. "도경이가 그래도 자기 학생 구하려다 그리된 건데. 우리도 사람인데 뭐라 할 것도 아니고, 절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피 안 섞인 사이라도 인사 정도는 한 번 와주는 게 예의 아니냐" 며 가슴을 쳤다.


-부모가 없는 아이였답니다.


(중략)


어머니는 뭐라 말을 덧붙이려다 "이럴 거면 같이 나오든가, 저라도 살든가. 아이고, 우리 막내, 아까워서 어떻게 해. 허무해서 어떻게 해. 내 새끼....." 하고 흐느꼈다.



그녀는 그렇게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 집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다가 영국에 사는 사촌언니의 제안으로 영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고, 현재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대학시절 친구를 만나게 된다.



여전히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과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시간 남편이 정말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실에 앉아 축구를 보고, 식탁에서 교무부장을 욕하고, 대형마트 통로에서 기획 상품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있을 것 같았다.



식탁에서 교무부장을 욕한다는 부분에서, 책의 메시지와는 동떨어졌지만 엄청난 현실감정이 느껴졌다. 작가가 직업에 대한 사전조사를 참 철저하게 해서, 읽는 사람이 생생하게 이야기 속 인물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주인공은 영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우연히 우편물함에서 '권도경 선생님 사모님께' 라고 적힌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누나 혼자 있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누나, 나 이제 갈게.

누나 사랑해.


실은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생각 못했는데,

꿈에서 지용이를 보고 나서야

권도경 선생님과 사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용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모님도 선생님이 많이 그리우시죠?

그런 생각을 하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요.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그녀는 남편인 권도경 선생님이 구하려다 함께 빠져죽은 아이 지용의 누나가 보낸 편지를 읽고나서야 처음으로 그 날, 그 시간 제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뛰어들어간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다시 살아나오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삶'이 '죽음' 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것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어제 가자미구이를 해서 점심을 먹는데 배가 고팠던 아이가 허겁지겁 먹다가 생선가시 큰 게 목구멍에 걸렸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침 남편도 출근한 상황에 혼자 애둘을 보고 있어서 더욱 당황한 나는 '물!물!' 을 외치는 아이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손가락을 입속으로 깊이 집어넣기까지 했지만 가시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켁켁 거리면서 싱크대에서 토를 했지만 물만 흘러나왔고 다행히 조금 지나자 괜찮아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 고이 키워온 자식이 기도에 음식이 막혀서 갑자기 잘못되나 싶어서 하필 점심 때 생선을 구운 나 자신을 원망했다. 어린이집에서 고기와 야채는 먹지만 생선은 먹지를 못하니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기 위해 아침부터 고민하고 블로그 레시피를 찾아서 밀가루에 카레가루까지 넣어서 맛있게 구운 생선인데, 그냥 김이랑 계란 구워줄 것을 왜 그랬나 자책을 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책하고 힘들어하고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안타깝게 떠난 이들을 위해 남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백일을 갓 지난 아기였던 첫째아이가 지금 일곱살 어린이가 될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실은 미궁속에 빠져있다. 그때 당시에도 교사로서,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내서 너무나 미안하고 슬펐다. 다시는 이땅에 피워보지 못하고 지는 꽃이 없도록, 구조조차 제대로 못해보고 속수무책 바라만보지 않도록, 누가 국민을 이용하고 누가 국민을 위하는지 모두가 두 눈 똑똑히 지켜보고 가려내야 할 것이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려는데 내 옆에 꼬옥 붙어서 입냄새를 풍기며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두 딸을 보면서, 오늘 하루도 얼마나 선물같은 날들인지 생각해본다. 물론 그렇게 소중한 딸들에게 오늘도 얼른 준비해야 너희들 데려다주고 엄마 출근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조차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어른, 불의를 보면 입밖으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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