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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Jun 18. 2020

[서평] 쇼코의 미소 / 최은영

가깝지만 먼 당신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었다. 나름(?) 감성이 충만한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이 소설 앞에선 내 감성은 반응하지 못했다. 각각의 단편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다. 절대 문장이 읽기 어렵다거나, 내용이 낯설다거나, 구성이 어색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서사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은 인상적이고 신선했다. 문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글에서 표현되는 감정들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공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토록 공감하지 못한 적이 있나 싶다. 중학생 시절 셰익스피어 전집과 연옥을 읽을 때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어떤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인지 능력 밖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반면에 이 소설은 인지 능력 밖이라기보다는 언어가 다른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히 아는 감정인데 암호처럼 해석이 안되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이라서 남자인 내가 공감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감정이 메마르고 둔해진 것일 수도 있다. 뭐가됐든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고 메말라 버린 것 같아 서글펐다. 보고서에 익숙해지고 논리적인 글에 익숙해진 나머지 서사와 감정의 흐름이 낯설고 어색해진 것 같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씬짜오 씬짜오'는 쉽게 이해가 된 반면 '한지와 영주'는 일말의 공감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중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글은 '먼 곳에서 온 노래'였다. 대학 시절 마주쳤던 사회와 이상의 괴리에서 느꼈던 절망감을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괴리는 삶 속에서 계속해서 답이 없는 화두를 던지며 우리를 시험한다. 그 괴리는 이길 수도 해결할 수 도 없는 문제일 뿐이지만, 과거의 우리는 고민의 끝을 잡고 끊임없이 고통받았다. 지금은 고민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했다. 그저 한 발이 들어오면 물러서고, 한 발을 물러서면 다시 내딛는 브루스를 추며 그렇게 뒤섞인 채 살아갈 뿐이다.

'쇼코의 미소'에서는 평소에 느끼던 거리감과 친밀감이 뒤섞인 관계가 떠올랐다. 이분법적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런 관계도 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관계라는 것에서 확신을 갖기 위해 그동안 너무 부질없는 고민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모든 관계가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관계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해하고 해석하고 대응하려 하기보단,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지만 언제나 관계 사이에서 잔뜩 날을 세운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 보단 쉽게 상처 받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표정에서 남들이 읽지 못하는 것을 읽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며 기대하고 상처 받기를 반복하다 보니 생긴 일종의 방어기제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작 관계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관계 자체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관계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단순화하지 못하면, 그 관계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계속 거리를 두게 된다. 아직 인지는 '나'에 머무른 채 '관계'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동시에 관계에 대해선 언제나 목마르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한 목마름은 관계에 대한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고민이 늘어나고 생각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인지는 더욱 '나'로 침잠하고 상대방을 향하지 못한다. 악순환이다.

내가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 작가의 의도와 맞는다거나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책이 이런저런 생각을 불러일으켰고 그 생각 끝에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을 읽은 시간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니라 생각한다. 조금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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