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와 죽음 그다음에 대하여
'개미'이후로 쭉 #베르나르베르베르 의 팬이었다. 대학교 떄는 그의 작품을 주제로 발표까지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동안 그가 신간을 내면 무조건 찾아 봤다. 그리고 시간의 변화만큼 그의 작품세계가 변하는 것이 좋았고 또 그만큼 변하지 않는 그의 상상력이 좋았다. 오랜만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여전히 그만의 공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죽음'은 예전 '개미' 이후 열광하며 읽었던 '타나토노트'가 연상되었다. 물론 그때보다 극적 긴장감은 덜 했지만 특유의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공상은 여전히 신선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일까? 예전만큼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없었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은 글의 흐름을 방해할 뿐이다. 추리 소설이라기엔 힌트도 없었고 범인을 찾는 과정도 허술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추리 과정과 상관없는 그만의 범인을 만들어 두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첫 장면에서 가브리엘이 '누가 나를 죽였을까?'라는 질문을 할 때만 해도 몰입감이 고조되는 듯했지만 뒤로 갈수록 이것은 추리 소설도 스릴러도 공상 과학 소설도 아닌 어중간한 작가의 사상 서처럼 되고 만 것 같다. 처음부터 추리소설의 형태를 띨 뿐 추리보다는 영성과 영혼의 자유, 작가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전작인 '고양이'는 아이디어도 신선했고 사건의 진행도 조마조마하며 보게 되고 그 안에 든 작가의 철학도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작가의 세계관이 새롭게 확장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었다. 하지만 '죽음'에 와서는 작가가 뭔가 혼란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글에서 계속 이어지는 전통적인 문학과의 갈등과 작가 정신에 대한 고민이 아마도 그 혼란의 정체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해 꾸준히 열광하고 지지해왔지만 모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문학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통적인 문학 세력과의 갈등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그의 팬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상상력과 새로운 사상 그리고 도전은 그 작품이 낯설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물며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작품 자체는 기대와는 달랐고 이념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조금은 난해했지만 그래도 뭔가 초기 작품 때로 돌아간 듯한 세계관과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인상 깊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정의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진정한 삶의 시작으로 보는 작가의 시선은 작품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은 핵심적인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죽음은 해방인 반면 출산은 자신을 꽃 피우기 힘든 억압적 세계로 들어가는 일... 결국 내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실패한 삶을 살 위험이 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