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wboy hero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되면서 트렌드 코리아 2021을 찾아 읽었다.
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사람 치고는 이제 트렌드 코리아를 읽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려워졌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이 항상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사람들은 이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자신의 삶이 그 흐름에 잘 올라타고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닐까?
올해의 키워드 COWBOY HERO를 살펴보겠다. 그런데 키워드를 정리해놓고 보니 올해는 조금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히려 핵심 키워드와 알파벳이 잘 매칭 되지 않는 것 같다.
C : Coming of V-nomics (포스트 코로나)
O : Omni-layered Homes(집이라는 공간의 인식 변화)
W : We are the Money-friendly Generation(자본주의 키즈)
B : Best We Pivot(사업의 전환)
O : On this Rollercoaster Life(변화가 빠른 참여 세대)
Y : Your Daily Sporty Life(오늘 하루 운동)
H : Heading to the Resell Market(N차 신상)
E : Everyone Matters in the CX Universe(고객 체험)
R : Read Me Searching for the My Own Label(나는 누구인가)
O : Ontact, Untact, with Human Touch(언택트 세상에서 중요한 건 인간적인 케어)
2020년의 트렌드를 돌아보고 그 연장선상에서 2021년 트렌드를 읽어 보면 역시 코로나 19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한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이 여실히 눈에 띈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하듯 '코로나 19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닌 기존의 문제를 가속화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가속화한 변화들로 인해 우리가 헤쳐나갈 2021년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생존'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 다가올 K자형 경기회복은 될놈될 정신을 전 사회적으로 증명하며 수많은 이탈자를 양산할 것이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선 가진 모든 역량을 활용한 성공적인 Pivot 은 반드시 이루여야 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K자의 아랫변에 위치해 있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현업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이 위기고 매 순간이 불안하다.
현업의 입장에서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빠른 의사결정과 실험적인 시도,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가 무엇인지 너무도 공감하지만 많은 조직들이 실제로 이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여전히 기존 시대의 조직형태. 룰과 절차, 평가 기준에 얽매여 쉽사리 Pivot 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그로 인해 회사라는 배가 침몰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인들이 가진 자산과 역량을 활용한 사업전환(PIVOT)을 얼마나 잘 수행해내는지 변화된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결국 올해 생존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현업에서 느낀 점을 책에서 짚어주니 왠지 뿌듯하면서도, 지금 느낀 위기 역시 가시권에 들어온 것 같아 한층 더 암담해진다.
게다가 마케팅을 해야 할 대상인 시장과 고객은 점차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가치가 변화했고 필요한 것들이 달라졌다. 표준화된 모델보다는 개인 맞춤형 상품이 필요해졌다. 사실 이는 여러 상황과 표현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사실 고객은 언제나 그래 왔다. 그때마다 마케팅의 방식과 소구점을 바꾸며 적응해왔다. 올해 역시 본질은 동일할 것이다. 좀 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건강과 안전이 중요해졌을 뿐이다.
이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객이 한층 까탈스러워졌으며, 영리해졌기에 적당히 해서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객의 합리성과 만족의 기준은 모두가 천차만별이고 빠르게 변한다. 명확한 팬덤을 구축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순간순간 변하는 흐름에 맞춰 숏케팅을 할 수밖에 없는 최악으로 열악한 시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매년 트렌드 코리아를 읽으면서 너무 무서운 건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상품의 가치만으로 승부할 수도 없다. 그만큼 그 상품의 가치와 그 상품을 통한 경험을 중요시한다. 게다가 이젠 상품을 통해 인간적인 만족감마저 제공해야 한다. 예전엔 명품 브랜드가 고객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는 데 지금 우리의 시장이 그렇다. 단순히 명품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제품의 선택에서 고객은 단순한 재화의 가치 이상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찾고 있다. 과거 표준화된 획일적인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애쓴 시간이 몇십 년인데 겨우 1~2년 만에 우리는 다시 개인별 맞춤형 상품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도 큰 괴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의 흐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왠지 서글퍼진다. 사람들이 삶의 목표 내지는 기준을 갑작스레 읽고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과거 우리는 개발 도상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내달려 왔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Fast-follower 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그런데 이제 막 도착했더니 숨 쉴 틈도 없이 이젠 세상의 기준을 바꾸는 Rule-Changer가 되라고 한다. 정해진 기준에 맞춰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가 삶의 기준이었는데 갑자기 게임의 룰이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이젠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한다. 이미 환경, 규율, 시스템을 과거의 기준에 맞춰 완벽히 구축했는 데 한 순간에 이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한다.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뀐 기준하에선 어떻게 사는지 길을 잃어버렸다. 누군가가 길을 제시해주지도 제시할 수도 없다. 각자의 기준이 다 맞으면서 동시에 틀릴 수도 있다. 가치가 무너졌고 혼란이 도래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선택의 책임은 철저히 개인에게 귀속된다.
그렇게 공동체는 분해되고 개인만 남아 불안에 떠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정의 내리고 싶어 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인간관계의 공허와 목마름으로 인해 인간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가치를 투영시킬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도록 각자의 취향에 맞춘 상품을 찾는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돈과 자신의 경험만이 중요한 세대가 탄생했다.
우리나라는 개인화를 공동체의 파괴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 두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화는 개인의 인격과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개인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은 대명사처럼 된 '90년생'은 기성세대와 달리 정말 정의롭고 개인 성향이 강할까?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지금 도전자의 입장이기에 그런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 그 들이 기득원이 되어서도 지금과 동일한 모습을 보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불이익에 민감하지만 반대로 이익이 된다면 기성세대보다 더 큰 희생과 헌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설령 그것이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불이익을 받기 싫기 때문에 공정가치를 요구한다. 이미 모든 룰이 기득권에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우리와 동일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뉠 것이다. 트렌드에 잘 편승했음에 뿌듯하거나, 트렌디하지 못함에 좌절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트렌드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업무 목적으로 책을 찾아 읽으면서도 어느 트렌드에서는 뿌듯하고, 어느 트렌드에서는 괜히 뒤처진 것 같고, 어느 트렌드는 이해도 힘들었다.
이는 트렌드 자체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이미 트렌드는 단선적인 모습이 아니다. 복합적으로 합종연횡과 정반합을 반복하며 변화하고 흘러간다. 그 모든 흐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트렌드 속에서 난 어떤 길을 찾아낼 수 있느냐 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찾은 길은 바로 살아남는 것이다. 바이러스로부터, 경제 위기로부터, 인간관계의 파편화로부터 살아남아 풍족하고 충만한 인생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나의 인생'을 '나만의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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