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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Jul 10. 2020

이제는 일어설 때가 왔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 합니다.

20살, 치열한 고등학교 수험생활을 거쳐 나름 명문 법대를 입학했다.


새내기의 흥분도 잠시, 학교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의 반 타의 반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의무감과 기대감이 뒤섞여 시작된 고시 생활은 28살까지 근 9년을 이어졌다. 그리고 9년 간의 (사법) 고시 생활은 인생에 커다란 상처만을 남긴 채 실패로 남았다


28살, 도망치듯 군대로 입대했고 다행히 조용한 철원 전방에 배치되어 피폐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결국 상병을 달고 여유가 생기자 고시에 대한 미련이 고개를 었고 결국 다시 책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희미한 다짐으로 넘기에는 고시는 녹록지 않았고 그렇게 군 생활 2년까지 합쳐 10년간의 고시 생활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다행히 전역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입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배우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군 시절을 포함해 남들은 고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그 시기들이 내게는 평온하게 느껴졌다.

고시 생활이 주는 압박과 긴장으로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는 피폐한 삶에 익숙한 나에게 군대와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는 견딜만했고 오히려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저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 무렵 한 가지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바로 '치열함'에 대한 강박이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바쁘게 살고 있지만 뭔가 치열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대입 준비에 이어 붙여 고시 준비를 하면서 치열한 생활이 몸에 배다 보니 왠지 나태하면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분명 그것은 강박임에 틀림없었고, 내심 편안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 생각을 무시하려 애썼다.

특히 당시에는 결혼 후 가정이 가져다준 안정감에 취해 있었다. 인생에서 이토록 충만할 수 있음을 처음 느꼈기에 그 달콤함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한 번씩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고 누르며 그렇게 조금씩 게을러졌고 나태해지며 평범해졌다.


그 시간은 행복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공허함과 목마름이 문제였다. 단순히 강박으로 치부하기엔 그 공허함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려 나갔고 어느 순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가 뭔가 잘못된 걸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국 그 감정의 정체를 알기까지 10년 정도가 걸렸다.


그 감정을 깨닫게 된 계기는 우연히 들은 유튜브 인생에 대한 강연이었다. 주제는 실패했을 때 일어서지 않으면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넘어져도 일어서라는 내용이었다. 일어서지 못하면 평생 루저로 남는다는 그 뻔한 말이 왠지 그 순간 가슴에 박혀 맴돌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난, 고시 실패 이후 쭉 넘어져 있었음을.


커다란 실패 이후, 알지 못하는 사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무의식 중에 그 어떤 것도 무리하게 도전하지 않으려 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도록 치열하게 어떤 일에 투신하며 살지 않으려 했다. 지난 10년 간의 회사 생활과 결혼 생활을 하는 내내 넘어진 채로 그 길을 쭉 걸어왔던 것이다. 아마도 강연처럼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면 같은 길을 걸었더라도 10년이 지난 후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젠 정말 일어서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고시 준비는 결국 여러 꿈 중 하나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저 하나의 실패였을 뿐이었다. 분명 그때 마음속엔 다른 꿈들과 비전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실패에 발목 잡혀 현실에 안주하고 평온함에 만족하며 그 모든 꿈을 포기하고 도전하기 주저했던 것이다. 또 다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이토록 짓누를 수 있음에 놀라고 또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게 10년 전의 내가 가졌던 꿈과 기회들이 덧없이 스러질 때마다 마음속에서 외쳤음을 듣지 못했다. 순간순간 느끼던 치열함에 대한 강박, 공허함, 목마름이 바로 그 기회들의 목소리였음에도.  




10년의 고시 생활이 남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10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비로소 극복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상처 받은 시간만큼 치유 시간이 필요하단 말도 완전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이제 일어나서 잃어버린 마음의 목소리를 하나씩 찾아보려 한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글쓰기에 대한 꿈을 되찾고, 블로그도 본격적으로 해보고, 읽고 싶던 책도 미루지 않고 읽어본다. 15분 안에 3km 달리기에 도전하며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고, 노래를 잘하기 위해 매일 같이 연습해 보고, 라틴댄스를 배우려 학원에 등록을 했다.

조금씩 과거의 자신에게 벗어나 지금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다시금 열정을 불태우고 치열하게 살아보고자 한다. 지금의 목표는 치열하게 행복의 기회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것이다.


과거와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깨에 잔뜩 힘만 들어가서 스스로를 괴롭히진 않는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집중하고 도전하는 것이 꼭 자신을 구석에 몰아붙이고 피폐해져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일단 시작하기'와 '작은 성취에 만족하기'로 극복하고 있다. '일단 시작하기'는 높은 수준의 목표에 질려 시작을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앞뒤 사정 따지지 않고 어떻게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성취에 만족하기'는 간단히 말해 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 것을 믿고 한 단계 한 단계 행하고 배우며 성장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방법만 지켜도 결코 실패할 수가 없다.


과거의 치열함은 필요에 의한 것이었기에 스트레스만 받고 너무 힘에 부쳤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치열함은 오롯이 자신의 비전과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언제나 새롭고 흥분되며 매 순간의 작은 성취들 덕에 기쁘고 행복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사리기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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