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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pr 10. 2021

부모의 역할

이해와 공감

아이들의 인생 속에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처음엔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호해진다. 


좋은 집과 윤택한 환경을 제공하는 부모?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부모?

예의범절을 엄격히 가르치는 부모?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생각을 거듭해도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잘 커서 향후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대동소이할 것이다. 동시에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도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만으로는 부모의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장난감을 사주고, 주말에 놀이동산을 데려가고, 학원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는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일상적인 것들은 부모의 역할이 아닌 의무에 가까울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인 셈이다. 부모라면 최소한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일상적인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말 그대로 아이들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일방적인 부모의 수용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부모의 감정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바로 이 부모의 감정 전달이 어려운 부분인데 익숙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화를 내서 본인의 감정을 전달한다. 하지만 막상 이런 식의 감정 전달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만을 심어주기 쉽다. 최소한 개인 경험으로 봤을 땐 확실한 사실이다.


얼마 전 짬을 내기 어려운 아내가 휴가를 하루 내서 아들이 어린이집을 마친 후 놀이터에서 원 없이 놀게 해 준 적이 있었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 다른 친구들은 매일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 어린이집을 마치면 버스를 타고 바로 집으로 오는 것이 서러웠던 아들을 위한 이벤트였다.

게다가 단순히 놀이터에서 논 것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모아다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기까지 했다. 아들의 만족도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았고, 그 날 중국집에서 찍은 사진에는 언제 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너무도 환하게 웃는 아들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아들은 평소보다 반박자 밝았고 구김이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깨우고 밥을 먹여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도 아빠고, 매일 저녁 씻기고 재우는 것도 아빠고, 주말에 키즈카페도 데려가고 놀아주는 것도 아빠지만 그 모든 노력이 엄마의 한 번의 이벤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매일 잔소리를 하고 할 일을 가르치는 부모의 '의무'만을 다했던 아빠는 아들의 일상을 지켰을 뿐이다. 하지만 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캐치해서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역할'을 했던 엄마는 아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단 하루마에 아빠가 일년간 하지 못한 부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급히 전화를 해서 퇴근길에 피아노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피아노를 받으러 가기 힘들었기에 툴툴거렸었다. 하지만 그 불만은 피아노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요즘 피아노 삼매경이었던 딸이 너무나 행복해하며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좋은 황경을 만들어주며 부모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을 하던 사이, 엄마는 딸이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 환경에 적합한 피아노를 구해 부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내가 중고시장을 뒤지며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썼을지를 생각하면, 아빠는 왠지 딸에게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이 역시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아빠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엄마가 정답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인생을 지탱하는 부모의 의무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없는 부모의 의무는 결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은 거창한 이벤트나 선물보다 부모와 함께한 인상 깊었던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자전거를 혼자 탔을 때, 부모와 재밌게 놀았을 때를 기억하며 그런 시간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오히려 바다나 놀이동산에 놀러 갔다가 혼만 나고 즐겁지 않았던 시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아빠로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 성공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솔직함이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무조건 기를 살리기 위해 오냐오냐하며 키운다거나, 엄하게 훈육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아빠보다는 잘했을 땐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기분 나쁘면 좀 삐지고 심술도 부리는 아빠를 좀 더 편하게 느끼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아빠와 아이들 사이에서도 감정적인 연대가 형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밝아졌고 친근해졌다. 아빠 역시 아이를 키우는 새로운 즐거움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아빠도 아이들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들과의 유대감을 단단히 하기 위해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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