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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ug 28. 2020

할아버지를 기억해줘서 고마워

자식보단 손녀가 더 났네

8살 딸은 본인이 5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지금도 많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시간이 지나도 딸이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모습이 일견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8살 딸이 그토록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생전 할아버지의 지극 정성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키즈카페, 놀이터 데리 다니셨으며, 낮잠을 잘 때도 밤에 잘 때도 언제나 딸의 옆을 지켜주셨었다.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날 때면 언제나 손녀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셨고, 그마저도 손녀와의 시간을 위해 서둘러 마무리하고 허둥지둥 돌아오시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는지 딸은 할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잘 따랐고, 맞벌이로 바쁜 아빠와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했던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못한 채 잘 커줬다.



며칠 전 이젠 커가면서 어릴 때 기억을 점차 잊을 것 같아 아직도 정말 할아버지를 기억하는지 궁금해진 나는 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기억이 나?"


"그럼 난 다 기억나. 매일 키즈카페도 데리고 갔고 놀이터도 갔고 날 엄~첨 사랑해줬으니까. 할아버지랑 있을 때는 너~무 재밌었어."


"그래? 우와 우리  대단하네. 할아버지가 좋아하겠네."


"근데 6살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할머니도 일하느라 매일 나가고, 아빠도 매일 바쁘고, 엄마도 자주 못 보고, 매일 어린이집 가고, 학교 가고 너~무 심심해서 기억이 잘 안나.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다시 내려와 주면 좋겠다."


갑작스러운 딸아이의 푸념에 말문 턱 막혀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인 5살 이전의 기억은 이렇게 선명한데, 오히려 돌아가신 후 6살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마도 그만큼 우리 부부가 딸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고, 딸아이의 인생을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괜스레 가슴 한편에 미안함이 피어올랐다. 누구보다 사랑으로 감싸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 어린 딸을 외롭게 한 건 아니었는지. 딸의 마음 깊숙이 허전함을 심어준 건 아니었을지.



평소에 특별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일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온 힘을 다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새삼 마음이 뻐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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