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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y 14. 2019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더는 얘기하지 마라

엄마가 이제는 엄마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자녀가 부모에게 이런 말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나도 저런 말을 중학교 때부터 해왔으니까. 하지만 부모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저 말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무책임하고 잔인하며, 불효 막심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평생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싶어서 희생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면, 왜 부모가 결과적으로 자식의 인생만을 바라보는 것 외에 자신만의 삶이 남아있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았다면, 부모에게 저렇게 내 던지듯 말을 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치열한 삶 속에서 부모는 온 힘을 다해 가정을 일구기 위해선 개인적인 욕심과 꿈을 지켜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의 성공과 화목한 가정을 둘 다 이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시대를 막론하고 이는 금수저 거나,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거나, 큰 능력으로 돈을 벌어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듦에도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선 자식을 1명만 낳든가, 아예 갖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부모의 선택이었기에 그 책임을 자녀에게 물을 수는 없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자녀가 부모의 십자가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점차 부모가 되어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생활, 나의 젊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족, 아내, 자녀만이 오롯이 각인되어 있었다. 아직 젊은 신인 부모인 지금조차 이렇게 가정을 지키고자 아등바등 치열하건만, 그 오랜 시간을 부모로서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들은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렇게 반쯤은 어쩔 수 없이 자녀가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 부모에게, 아들 딸 들이 머리 좀 굵어졌다고 이젠 모든 걸 떨쳐내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아마도 부모 입장에선 음을 바쳐 일하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 심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자녀들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을 때의 본인 마음을 유심히 돌아보자. 과연 부모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는지 아니면 부모가 간섭이 귀찮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우선이었는지. 지금 부모의 모습이 왠지 너무 초라하고 힘들어 보이는 것이 싫어서 내뱉지는 않았는지. 내 인생을 나아가려는 데 뒤에 남은 부모를 보는 것에 괜한 죄책감을 느껴 내뱉지는 않았는지되돌아보자. 진심으로 그 말이 부모를 위함인지, 자녀 자신을 위함인지.


어쭙잖은 위로와 배려는 상처를 남길뿐이다. 깊고 은밀해 드러나지 않는 속에서 곪아가는 그런 상처를.
 
부모 역시 성인이 된 자녀가 품을 떠나는 것을 알고 이해하며 그 이후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은 자녀가 아닌 부모의 몫이다. 자녀에겐 버리고 떠날 권리가 없다. 그러기에 우리 자녀들은 성장한 자녀의 인생에 부모를 녹여내어 함께할 순간을 만들고, 부모가 새로운 관심을 갖고 거기에 투신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응원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터이다. 그것이 진정한 가족애이며 효이지 않을까.

 
5월 어느 날 불효 막심한 내 모습에 반성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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