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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ug 16. 2019

갑질,Complain과 분노조절장애의 사이 - 1

Part-1

'과장님……저 좀 도와주세요~'
직원들의 저 애처로운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
'아……또 시작이구나.'
짜증이 밀려온다. 그분이 찾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갑질이란 이름으로 직원을 사뿐히 지르밟고 고객 놈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언제 스트레스가 가장 심할까?
모르긴 몰라도 고객 갑질에 시달리는 순간은 무조건 순위 안에 들 것이다.
물론 이런 스트레스를 못 느끼고 사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갑질로 인한 탈모, 만성 피로, 떨림, 울화병, 우울증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 울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 숱한 핍박의 역사 속에서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얼마나 갈았던지 이제는 칼날도 마음도 뭉그러져 버렸다.


 
# 갑질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때다 싶은 기회에 터져 나온 일탈이다.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자기 확인이다.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서의 잘못된 행동이다.
 
갑질은 힘의 역학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상사와 부하, 부모와 자식, 선배와 후배 등 모든 관계에는 그 관계만의 갑질이 있다. 그중에서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인 고객과 직원 사이의 갑질이다.
고객은 실제로는 우월한 지위와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고객의 위상은 달라지기 마련인데 수요가 공급보다 크다면 고객의 구매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회사에 끌려가게 되는 반면, 공급이 수요보다 큰 경우는 물건을 판매하기 어려워지면서 때문에 고객의 위상이 높아진다. 그리고 바로 이때 ‘고객님’이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기댄 채 무식하게 위세를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고객 놈’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갑질도 그 수준과 유형에 따라 단계를 구분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갑질의 단계별 특성을 살펴보겠다.  
 
 
# 1단계. 이유 있는 화풀이
이 경우는 회사의 업무상 실수나 잘못된 응대로 고객이 피해를 입는 등 고객의 요구에 명분이 있는 경우이다. 일단 회사는 고객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상황에 놓이고 고객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이 경우는 해결책이 간단하다. 사과를 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적절한 보상을 하면 된다. 그리고 고객이 이러한 사과를 지성인답게 받아들이고 양해를 한다면 문제 해결이다. 설령 받아들이지 못한 다 해도 그 이상을 요구할 근거나 추가적인 배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객 역시 딱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했던 적이 있었던가? 고객은 사과도 받았고 일은 정리가 되어 감에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고, 뭔가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알 수 없는 분노는 해소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면 찝찝할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이유 있는 화풀이'다.
특히 보상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그렇다. 회사 차원의 사과를 받았다 하더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그럼 뭐라도 좀 주면서 사과를 해야지’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고객은 어쨌든 자신이 겪은 피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면 호구 잡힌 듯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러니 애먼 직원만 붙잡고 달달 볶는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야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앞서 지은 회사의 죄가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고 고스란히 고객의 생떼가 멈추기를 그저 인내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당히 하다 고객이 지쳐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자면 주말에 온 가족이 키즈카페에서 놀고 주차장에서 출차를 하려는 데 사전에 안내받은 것과 달리 주차비가 천원이 나왔다. 고작 천 원이지만 우린 의아해서 확인 차 프런트로 문의를 했다.
그런데 누구도 제대로 응대를 하기는커녕 서로 응대를 미루는 것이 아닌가? 담당자가 세 번 정도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차량 번호를 묻고 문제가 없는 것 같다는 모호한 답변만 반복되었다. 이에 신경질이 나버린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전산 입력 실수였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담당자는 사과와 함께 천 원 보상을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치밀어 오른 우리의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오히려 천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괜히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내심 무료권을 몇 장 주면 모를까 그깟 천 원을 주면서 달래는 게 짜증이 났다. 정신적인 피해 보상도 받아야 할 것 같고 괜히 마음이 뾰족해지며 말도 날이 선채 쏟아져 나갔다. 결국 우리는 장사를 그런 식으로 성의 없이 하느냐며 화가 풀릴 때까지 소리를 지르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그 주말은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 가족은 다신 그 키즈카페를 안 갈 것이다. 고작 천 원 때문에.
 
이런 경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불편을 해소하려는 자세다. '난 당신의 분노를 이해하고 해소해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져주어야 고객도 만족하지 않겠는가. 1단계는 아직은 이성적인 상황이고 고객도 본인의 요구가 무리한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집중을 한다면 고객의 분노를 초기에 진화할 수 있다. 위 사례에서도 처음부터 사과하고 물 흐르듯 응대를 했다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예외는 있다. 상대방이 저자세로 나오면 뭔가 더 얻어내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경우도 있고 화를 더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2단계에서 다시 이야기해 보겠다.
 
1단계 갑질은 회사 측에도 리스크가 크지 않고 자질구레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충성고객을 떨어뜨리고 사업에 지장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회사는 빈틈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직원들 역시 고객과 인간적인 양해와 소통을 하는 것이 갑질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셈이다.
 
 
#2단계. '이유 없는 화풀이'
2단계는 이유를 불문하고 고객의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과해서 수용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업무 규정이나 상식 범위 내에서 받아들이기 애매한 요구를 하다 보니 직원들도 '안 된다.', '죄송하다', '어렵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고객의 격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의 폭발은 각종 소란, 인신공격, '사장 나오라 그래!’, '윗사람 불러와'로 이어진다. 뭔가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추면 차라리 원하는 대로 해주고 말 텐데 그것도 아닌 떼거지 수준의 요구는 정말 ‘대략 난감’이 아닐 수 없다.
 
2단계 갑질의 요구사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요구까지 들어주다니 감동이야' 같은 고객 감동 서비스와 '일단 큰 소리 내보는 거지. 안 되면 말고' 식의 생떼의 미묘한 경계선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고객의 말을 딱 끊고 내쳐버리기도 참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고객은 '그건 모르겠고, 나는 좀 해줘', '내 사정 좀 봐줘' 식의 남들과는 달리 본인에게만은 예외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예외적인 요구사항에 대하여 현장에서 즉각 판단해서 대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은 정해진 규정을 안내하고 그에 따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데 거기다 대고 자기 사정 봐주고 예외를 적용해달라고 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매번 사장을 불러 내거나 고객 응대를 의사결정권자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담당 임원까지 나오게 해 봤는데 결국 해결이 안 된다. 어차피 고객이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고 회사는 그 답을 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고객들은 본인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전화나 대면으로 지리멸렬한 논쟁을 몇 시간씩이고 이어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그 사이에 행여나 말꼬리라도 잡히는 경우엔 사안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직원의 혼을 쏙 빼놓곤 한다. 결국 직원은 답답함과 자괴감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고객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직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너는 짖어라. 난 모르겠다.'식의 모르쇠 전법을 시전 하거나, '안됩니다. 죄송합니다’를 무한 반복하는 앵무새 빙의를 발동하는 것뿐이다. 이런 고객들의 산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울고 싶어 지고 기력이 한 줌조차 남지 않곤 한다.
 
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무마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단호한 거절이다. 이런 방법은 일단 고객의 요구 사항이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다시 말해 이 것을 거절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회사 내부적으로 지탄을 받지 않을 만한 요구사항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 단호하게 고객의 요구를 차단해버리면 대부분의 고객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버려 컴플레인이 커질 위험은 있지만 계속 이 상황을 이어 갔을 때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 싶으면 냉정하게 고객의 말을 잘라 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그러면 최소한 내 업무 시간과 평화로운 하루를 건질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의외로 그렇게 했을 때 그게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고객이 우리 회사를 다시 안 찾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겪은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회사에 매년 같은 사안으로 한 번씩 찾아오시는 90대 노인이 계셨다. 이 분의 요구는 참 한결같았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도덕적으로도 들어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건설사가 분양한 아파트를 집값이 올랐으니 현재 오른 시가로 건설사가 다시 사가라는 그런 요구사항이었다. (사안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문제는 이 분이 차라리 다른 방법을 밟아서 해결을 하면 모르겠지만 그러지는 않고 매번 방문해서 평행선을 그리는 논쟁을 몇 시간이고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이 고객이 얼마큼 강경했는지 회사가 그 물건을 다시 사 와야 할 이유가 없음을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수년간 미팅을 이어왔지만 대화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정말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딱 그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야기의 마무리는 ‘난 예외로 해줘’였다. ‘내가 이 회사에 해준 게 얼마인데 그걸 못해주느냐’란 주장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심신이 녹초가 되어 버려야 그 자리가 마무리되곤 했다.
게다가 여직원이 응대하는 경우엔 폭력적 성향을 보이고 상급자가 나오자 멱살을 잡기도 해서 그 일을 계기로 회사 상담실에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처음엔 그 고객의 주장을 이해하고 가급적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매년 반복되는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어떠한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어떠한 설득도 통하지 않자 나도 어느 순간 지쳐버렸다. 이제는 그 고객이 찾아오면 강경하게 더 이상은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채 고객이야 계속 화를 내던 말던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옳다고 할 수만은 없고 냉정해 보이긴 하겠지만 지루하게 반복되는 쟁점을 벗어나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접근하길 바라며 소모적인 논쟁을 중도 차단해버린 것이다. 아마도 날씨가 선선해지면 그 고객은 올해도 찾아 올 텐데 이번에는 어떤 주장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고객의 요구가 이유가 없고 부당하다는 기준은 사회 통념에 의거해야 한다. 그 기준이 회사 내부 규정이나 직원들 만의 기준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회사가 고객에게 갑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기준을 철썩 같이 믿고 고객에게 철벽을 치다가 오히려 소비자보호원, 공정거래위원회, 민사소송 등을 통해 역공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To be continued in next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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