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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Oct 24. 2019

진급은 실적 순이 아니잖아요

진급은 필요한 사람이 된다


"이래서 진급하겠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급을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말은...")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야지. 실적이 이래서 되겠어? 올 해는 진급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말 끝마다 진급은... 잘하면 시켜주는 건가? 작년엔 뭐 실적이 나빠서 누락됐나. 순서에서 밀려서 누락했지.")

어느덧 올해도 다 가고 연말이 다가온다. 이 시기에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을 짜는 등 내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년'에는 조직 개편, 즉 '인사'가 포함되어 있다. 요즘은 임원 인사가 거의 상시가 되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9~10월 이면 임원에 대한 평가가 시작됨과 동시에 임원들은 한 해 더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예민해지고 치열한 물밑 작업이 시작된다.
이 때는 임원 아래의 피평가자들 역시 한층 예민한 평가자(사장님 이하 임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몸가짐을 조심히 할 때이다. 그리고 동시에 평가자의 권위와 말빨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흔히 말해 '인사철'이다.
이러한 '인사철'에 찍히면 위험하다. 그동안 쌓아놓은 성과를 부질없이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미 찍힌 직원들에겐 마지막 역전의 기회다. 인간의 판단력은 최근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실적이라도 안 좋으면 정말 최악이다. 이게 무시할 수 없는 게 인사철에 실적의 개선 여지가 안 보이거나 팀이나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 박히면 내년에 팀 자체가 공중분해되거나 엄청난 압박에 시달릴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치와 자기 PR을 위한 치열한 전장이 인사철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실적이 안 좋은 직원들은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정말 난리다. 그런데 이 만회를 하려는 부분이 일반적인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실적을 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기보다는, 뭔가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또는 자신이 이 조직에 필요한 존재임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자의 노력과 후자의 노력은 비슷하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른데 결정적인 차이는 후자는 실질적인 성과는 나오면 좋고 안 나와도 어쩔 수 없고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분명히 비효율적이고 방향성이 왜곡됐음에도 위 사람의 취향에 맞추고 일한 티를 내기 위해 그 방법을 고집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삽질과 요식적인 일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는데, 정말 Hell이다. 이를 실행하는 입장에선 돌아버릴 일인 셈이다. 이럴 땐 그런 말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괴감 들어...'

어차피 내년 진급자는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도 모른다. 평가하는 임원도 모른다. 사장님도 모른다. '진급은 제천'인지라 하늘만이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뭐라도 되는 양 어깨에 힘을 주는 건데? 그리고 이 동아줄이 불확실함을 앎에도 우린 왜 여기 매달리려고 하는 건데?


그렇다면 과연 진급은 실적 좋은 사람이 될까? 정말 천만에 만만에다. 주변에 실제로 실적이 좋아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떨어지는 직원이 있고 실적이 나빠도 가능성을 보고 진급이 되는 직원이 있다. 왜 이럴까?


요즘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대부분 인사평가는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로 구분된다. 정량적 평가란 앞에서 말한 실적(또는 성과)이며 정성적 평가란 결국 그 사람의 이미지 다시 말해 '평가자가 갖고 있는 이미지'이다. 좋게 포장해서 가능성이다. 결론적으로 실적이 나빠도 가능성이 있으면 진급하고 실적이 좋아도 가능성이 낮으면 실적이 저평가되어 진급이 안된다. 이 말은 결국 평가자가 키우고 싶으면 데리고 일하고 싶은 사람을 밀어준다는 이야기다. 그래 진실은 원래 아픈 법이다.

물론 실적이 탁월하다면 진급 확률을 높일 순 있다. 실적이 탁월한데 진급을 안 시키려면 정성평가에서 거의 인간쓰레기를 만들어야 하는 데 이건 평가자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평가자가 갖는 피평가자의 이미지가 피평가자 주변 동료가 가진 이미지와 다른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평가자의 시선은 동료와 다른 탓도 있지만 이건 결국 자신 기준에 맞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요즘처럼 세대차가 큰 상황에서는 가치관의 간극이 워낙 커 피평가자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진급이 되기 위해선 평가자가 좋은 점수를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최종 세션 때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밀어주어야 한다. 진급이란 우리 사업부만의 일이 아니라 전사와 경쟁을 하는 것인데 담당 팀장이 담당 임원이 옹호를 하지 않는다? 이건 절대 진급할 수 없다. 윗사람이 진정 밥값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진급을 하려면 윗사람한테 잘 보여야 한다. 온갖 논리와 당위성, 사회 분위기 등으로 이 뻔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진급은 자기 PR이며 이미지 메이킹이고 신뢰와 공감대 형성이며 그 끝은 아부와 정치다. 그래서 우린 그 동아줄을 잡으려고 하나 보다. 끝이 어디 닿아 있는지 몰라도.  


 언젠가 인사팀장에게 이러한 인사평가가 불공정하다고 물은 적이 있다. 업무와 각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기준과 목표 수립과 평가의 과정이 너무 경직되고 형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어차피 어떤 인사제도를 도입해도 인사평가는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조금은 의외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자조 섞인 이야기가 아닌 인사제도의 본질을 관통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고 사람이 평가하는 조직에서 인정과 예외, 변동성을 배제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럼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정의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어떻게 획일적인 하나의(설령 다수의 기준이더라도) 기준을 수립하고 적용하여 모두가 만족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상대평가하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절대평가가 해답이란 건 아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해보련다.)
예를 들면 돈을 잘 버는 데 태도도 불량하고 서류 업무는 꽝인 사람은 어디까지 진급할 수 있을까? 기획과 서류 업무에만 능한 데 영업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둘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누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연봉 인상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모든 조직 나름대로 기준이 있고 해답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만이 없는 회사가 있던가?
조직이 정말 우수한 사람을 뽑고 싶다면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면 인사제도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인사제도로는 지금의 회사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진급은 우수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직을 이끄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조직의 특성을 이해하고, 오래 근무하며, 로열티를 보일 수 있는 직원이 회사의 필수 인재다. 좋은 학벌과 뛰어난 실적이 전부는 아니란 거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선 실적이 좋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게 아니냐고.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영업 실적이 아닌 업무 성과로 평가를 받는 스태프, 공무원 등을 생각해보라? 그들이 얼마나 성과에 차이가 날까? 그리고 성과가 좋은 데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고 협업이 안 되는 직원은 진급을 시켜야 할까? 능력은 평범한데 성실하고 친 조직적이고 사람들과 융화가 잘 되는 사람은 진급할 가치가 없는 것인가? 어렵고 또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직원들 역시 완벽한 인사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소박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상사의 기분과 성향에 따라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다. 정말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진급이 된다면 그게 누가 봐도 그럴 수 있지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진급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진급은 어쩌면 사람 사이에 잘 보이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아삼육끼리 모이고 지금의 회사 시스템에 적합한 사람끼리 모이고 남겠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론은 이 조직에서 진급에 떨어지면 내가 부족하고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조직과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사제도와 진급이란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하고 진급하지 못한 나를 들볶지 말자는 것이다.

내년 진급은 누가 되려나...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고 실망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하련다. 난 직장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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