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습관적으로 읽게 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잊지 않고 매년 이 책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예견과 분석의 정확성보다는 현재 사회의 눈에 띄는 흐름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트렌드가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최근의 트렌드를 읽다 보면 지금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평소 느끼는 감정과 생각, 나의 행동 패턴이 그 안에 녹아져 있다는 점이다.혹자는 뭐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회사와 집만을 오가며 사회 변화에 대해 무심하고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어쩌면 트렌드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소소한 선택의 집합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역으로 본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평소 생각과 감정이 결국은 이 트렌드를 촉발하고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MIGHTY MICE 각각의 키워드마다 의미가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 맥락은 바로 '개인'이다. 2020년의 트렌드는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이는 어쩌면 점차 사회가 개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극단적인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에 초점이 맞춰짐에 따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뚜렷해지고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특히 평소 남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진 경우, 예전에는 눈치를 보며 표현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독특한 생각 자체가 하나의 가치로 인정받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멀티 페르소나'이다. 정리하자면 개인이 외부에 드러내는 이미지가 개인의 취향과 처한 상황 그리고 대상에 따라 자연스레 달라진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는 이런 사람에 대해 다중이, 양면적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이 더 컸다. 어린 시절 사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받은 이상한 것을 보는 듯한 그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대상과 상황에 따라 의견, 입장, 성향이 바뀌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느꼈음에도 반대로 외부에 보이는 모습을 포장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오히려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업글인간'이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성공을 위해, 미래를 위해 현실의 고됨을 감내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차라리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즐겁게 살고 싶었다. 사실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의 태도에 대해서 언제나 어른들로부터 야망이 없다거나 배가 불렀다는 비난을 듣다 보니 잔뜩 위축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성공을 위한 노력이 보답받기 점차 어려워지면서 성공보다는 성장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런 트렌드는 인간의 본능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성공보다는 성장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 삶의 진보인지 아니면 위기 속에서의 방어기제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만의 생각, 감성이란 이름으로 내부에 품어왔던 것들이 솔직하게 표현되며 트렌드를 형성한다는 것은 개인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이 어떨지는 몰라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러한 개인 중심의 트렌드를 보면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대중의 우민화’처럼 개인의 합리적 판단과 행동이 전체 사회 정의와는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우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감에 따라 사회적 연대가 약해지면, 오히려 경제 성장률은 감소하고 구성원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도 있고, 신뢰가 무너지며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바이토 테러’(아르바이트 테러)가 사회적 유대가 약해지면서 새롭게 생기는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기사화되는 것을 보면 개인 중심의 사회일수록 사회 정의와 연대, 소속감 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가 '페어플레이어'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개인’ 중심으로의 사회 변화는 커다란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이미 시장은 급진적으로 변화했으며 기존의 수요와 시장에 대한 이론과 경험은는 점차 효용성이 낮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경영전략 수립이 중요해지고 있다. '표준화 위에 다양하기 그지없는 개인의 취향이 우선시되면서 보편적으로 괜찮은 것보다 선택된 그룹의 확실한 만족이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하는 것을 쫓기보다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민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영자들은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찾고 그 속에서 쪼개고 쪼개 엣지를 만들어야 한다.' ‘Niche 한 것이 Rich 한 것이 되었다.’ ‘초 마이크로 매니징의 초정밀 특화 전략이 필요해졌다' 이런 경영 환경의 변화는 마케팅과 세일즈 일선에 있는 사람들에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잡고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한편에서는 변화되는 환경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이라 이러한 트렌드가 도통 반갑지가 않다. ‘팬슈머’, ‘특화 생존’, ‘오팔 세대’등으로 대표되는 각 세대와 특정 계층의 트렌드를 모두 공감하고 이를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 양극화가 가속됨에 따라 프리미엄과 저가형 상품으로 극단적으로 시장이 나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리미엄 시장에 대한 관심과 공략을 위한 노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편리미엄'은새로운 확장성을 의미한다. 편리함, 효율성이 하나의 프리미엄의 가치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알고 나니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참으로 신선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항상 프리미엄은 남과 다름, 우월함의 상징이었지만 이미 개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그러한 우월감과 차별성은 너무 당연해지고 있기에 또 다른 프리미엄의 척도가 필요했고 그리고 그중 하나가 편리함을 통한 삶의 수준의 성장과 만족일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일상에서 순간순간 마주치는 생각과 감정들을 검증받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불안해지기도 하고, 자신이 어느 트렌드의 속해 있음에 기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트렌드의 중심에 '개인'이 있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가치관을 공고히 하고 나의 인생의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설령 그것이 트렌드를 거스른다고 할 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조차도 지금의 트렌드 속에서나 가능한 생각일 수고 있다. 결국 트렌드라는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트렌드 안에서도 주도자들이 있고 예외자들이 있다. 트렌드가 모든 것을 결정짓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트렌드는 그저 트렌드일 뿐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