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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5. 2020

그런 수업 필요 없습니다.

국가 재난 상황에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일의 발단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전 사회적인 혼란이 확산되는 와중에 집 근처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최우선적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집은 고사하고 집 앞 슈퍼마켓조차 나가지 못했다. 학원은 물론이고 가정방문 학습지까지 모두 중단했다. 
특히 많은 사람을 만나는 학습지 교사들의 특성상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수업 자체를 취소할 수는 없기에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수업을 유예하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주 4회 가정방문 수업을 받는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오롯이 노부모가 아이들에게 시달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이들도 수업을 즐거워했고 부모가 따로 챙기지 않아도 한글, 영어, 한자, 수학을 조금씩 깨우치는 모습을 보며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한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문 앞에 교재를 두고 갈 테니 자습을 한 후 다시 문 앞에 걸어두면 채점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은 후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월이 바뀌었고, 아이들의 무료함도 커진 만큼 부모들의 스트레스도 점차 쌓여가고 있었다. 특히 아내는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은 전 적으로 내 몫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밤 10시, 11시가 넘어 날아오는 학습지 선생님의 카톡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학습지를 놓고 갔다거나 내일 회수할 테니 걸어놓으라는 내용이 다였다. 늦은 시간 연락에 대한 양해나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없음에 마음이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커리큘럼과 진도를 맞추기 위함이라고 일견 이해를 하면서도 솔직히 퇴근해서 아이들을 매일 공부를 봐주고 그 진도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4월 수업료 이야기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다른 모든 과정은 수업을 유예하면서 당연히 수업료 지급도 미뤄졌건만 이 선생님은 계속 교재를 전달하느라 본인이 오갔기 때문에 수업료를 정상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수업료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업료 때문에 그토록 교재를 풀 것을 다그쳤고 교재를 받아갈 것을 강요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뒤엉키는 것 같았다.

솔직히 2월도 수업을 절반도 안 했지만 수업료 환불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3월도 이미 결제한 수업료에 대해서 환불을 요구할 생각이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 했었다.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수업을 진행한 적도 없고 교재 몇 번 문에 걸고 갔다는 이유로 이 모든 우리의 배려가 당연한 것이 되고 오히려 4월 수업료를 이야기를 하는 그 교사에게 화가 났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다. 최소한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 안 들었을까? 교재비만 받겠다고 했으면 이해를 했을까? 문제는 선생님의 일방적인 태도였던 것 같다. 마치 우리가 을이 된 것처럼 아이들을 봐주는 선생님이 갑인 것처럼 우리 사정은 아랑곳 않는 그 선생님의 태도에서 인간적인 배신감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을 맡긴 것이 무슨 약점이라도 되는 양 쓴소리 한나 제대로 못하는 어머니나 와이프가 호구 잡힌 것 같아 답답하고 더욱 기분이 나빴다.

결국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우리는 해당 업체 지점장에게 수업 취소를 통보했고 2월부터 지금까지 수업을 진행하지 않은 만큼의 환불을 요구했다. 아직 환불에 대한 답은 받지 못했다. 아마도 부드럽게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쉽사리 넘길 생각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갑질을 해댔으니 나 역시 갑질 한 번 부려보겠다는 억하심정의 발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한 항공, 행사, 공연 등의 취소가 이따르면서 이에 대한 환불 조치에 대한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각 계약별로 환불 규정이 있지만 이러한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른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별거 없다. 누구든 이익만 볼 수는 없다. 국가적인 위기에 손해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배려와 협의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부당하지 않도록 상식적인 수준에서 배려하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린 학습지만 네 개를 하고 있다. 다른 학습지 선생님들은 본인들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먼저 수업 유예를 권유했다. 우리는 최소한의 배려로 2월 수업료는 수업을 하지 않았어도 100% 지불했고 말이다. 
그런데 본인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아이들을 이용하려 하다니 괘씸하고 또 괘씸해서 용서가 안 된다.

우리도 그런 수업받을 생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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