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 소리가 들린다. 생경한 알람 소리에 일어나 보니 딸이 아침에 일어나려고 맞추어 놓은 알람이다. 뒤이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내리며 일어나는 딸에게 왜 알람을 맞췄냐고 물어보자 숙제를 못해서 하려고 맞춰놨다고 대답한다. 며칠째 새벽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하며 일에 파묻혀 사는 동안 아이의 숙제도, 컨디션도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내 일에 집중하는 동안 너는 혼자서 할 일을 하는 아이로 커버렸구나'하는 안타까움과 기특함이 공존하는 마음이 들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업무를 눈길을 헤치고 나아가듯 꾸역꾸역 해나간다. 깊숙하게 빠지는 발을 빼고 질척거리는 눈을 털어내며 나아가는 동안 나만 그렇게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봐주러 한달음에 달려와주신 친정 부모님과 "엄마 걱정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고 와. 내가 할아버지랑 잘 놀고 있을게."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있었기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 내가 버티는 동안 옆에서 같이 커가며 내가 쓰러지지 않게 모두 함께 버텨주고 있었다.
이제는 아가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9살이 되어버렸지만 내 품 안에서 입만 옹알옹알거리던 아이가 그 입으로 이제 혼자 할 수 있다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 건 또 다른 감동이다. 이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애잔하고 자랑스러우면서 훌쩍 커버리는 게 서운하고 대견하다.
일하는 부모의 부채감 특히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오는 부채감은 항상 나를 내리누른다. 그래도 아침도 먹지 못해 허한 속을 달래려고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챙기며 새벽에 정신없이 출근을 하는 나에게 초콜릿 2개를 찾아와 손에 꼭 쥐어주는 딸이 있기에 오늘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아가야 부디 딱 그 나이만큼만 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