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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Jan 06. 2023

아이의 새해 소원

10살이 된 아이의 새해 소원은 계란프라이하는 방법 배우기, 칼로 연필 깎는 방법 배우기였다. 아이의 소소한 소원에 감사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 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항상 조금 늦은듯하게 자조기술을 획득해나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 느린 속도에 발맞추어 주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아이의 성장 속도가 미끄러지듯 빠르게 내달린다.


새해 첫날 아침부터 프라이팬을 들고 대기하는 아이 탓에 일단 가르쳐줘 보자고 결심하고  가지 안전수칙을 거듭 강조하며 계란프라이 만들기를 시작했다. 아직 가스불 키는 것은 위험해  조절하는 방법만 알려주고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면 계란을 깨뜨리고 올리는 것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나라도  해주려는 나의 손과, 하나라도  해보려 나의 손길을 뿌리치는 아이의 손 사이에서 어색한  손만 갈길을 잃고 둥둥 떠다녔다.



드디어 완성된 계란프라이. 모양은 별로지만 소금도 뿌리고 마지막에는 케첩도 뿌렸다. 병으로 된 케첩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알려주니 이제 그만 알려줘도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이가 계란프라이를 먹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자기가 한 계란프라이가 최고 맛있다고 연신 소리치는 아이. 그 오동통한 손가락과 오물거리는 입이 미칠 듯이 사랑스러웠다.



이날은 삼시 세 끼를 계란프라이만 먹었다. 사실 계란프라이에 대한 열정은 다음날에도 이어져 다음날에도 매 끼니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반숙으로 했다가 완숙으로 했다가 조금 태우기도 했다가.. 야무진 손가락에 몰두하는 입모양, 어느 모습하나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계란 한 판을 다 쓴 것 같다.. 입에서 계란냄새가 나서 못 먹을 때쯤 아이도 질렸는지 그제야 계란프라이를 해보겠다는 소리를 멈췄다.


그 다음은 칼로 연필 깎는 방법을 알려줄 차례. 나는 평소에 연필깎이로 둘둘둘 깎는 것보다 종이를 아래 두고 칼로 사각거리며 연필을 깎는 걸 선호한다. 마지막에 연필심을 슥슥슥 긁어 적당한 두께로 만든 다음 첫 번째로 쓰는 글자를 좋아한다. 이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아이도 칼로 연필을 깎아 보겠다고 했다.



자세를 제법 잘 잡고 깎아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불안하지만 이제 곧 스스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뚤빼뚤해진 연필의 나무 부분이 앙상해 보이지만 나름 신중을 기해 깎고 있다.



불과 칼, 아이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기 이르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를 아이는 배우기를 기다렸고 1월 1일이 되자마자 약속했던 종이를 내보이며 "엄마, 난 이제 난 준비가 되었으니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준비를 시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 우리 이렇게 쭉 이렇게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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