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이 된 아이의 새해 소원은 계란프라이하는 방법 배우기, 칼로 연필 깎는 방법 배우기였다. 아이의 소소한 소원에 감사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 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항상 조금 늦은듯하게 자조기술을 획득해나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 느린 속도에 발맞추어 주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아이의 성장 속도가 미끄러지듯 빠르게 내달린다.
새해 첫날 아침부터 프라이팬을 들고 대기하는 아이 탓에 일단 가르쳐줘 보자고 결심하고 몇 가지 안전수칙을 거듭 강조하며 계란프라이 만들기를 시작했다. 아직 가스불 키는 것은 위험해 불 조절하는 방법만 알려주고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면 계란을 깨뜨리고 올리는 것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나의 손과, 하나라도 더 해보려 나의 손길을 뿌리치는 아이의 손 사이에서 어색한 내 손만 갈길을 잃고 둥둥 떠다녔다.
드디어 완성된 계란프라이. 모양은 별로지만 소금도 뿌리고 마지막에는 케첩도 뿌렸다. 병으로 된 케첩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알려주니 이제 그만 알려줘도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이가 계란프라이를 먹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자기가 한 계란프라이가 최고 맛있다고 연신 소리치는 아이. 그 오동통한 손가락과 오물거리는 입이 미칠 듯이 사랑스러웠다.
이날은 삼시 세 끼를 계란프라이만 먹었다. 사실 계란프라이에 대한 열정은 다음날에도 이어져 다음날에도 매 끼니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반숙으로 했다가 완숙으로 했다가 조금 태우기도 했다가.. 야무진 손가락에 몰두하는 입모양, 어느 모습하나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계란 한 판을 다 쓴 것 같다.. 입에서 계란냄새가 나서 못 먹을 때쯤 아이도 질렸는지 그제야 계란프라이를 해보겠다는 소리를 멈췄다.
그 다음은 칼로 연필 깎는 방법을 알려줄 차례. 나는 평소에 연필깎이로 둘둘둘 깎는 것보다 종이를 아래 두고 칼로 사각거리며 연필을 깎는 걸 선호한다. 마지막에 연필심을 슥슥슥 긁어 적당한 두께로 만든 다음 첫 번째로 쓰는 글자를 좋아한다. 이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아이도 칼로 연필을 깎아 보겠다고 했다.
자세를 제법 잘 잡고 깎아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불안하지만 이제 곧 스스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뚤빼뚤해진 연필의 나무 부분이 앙상해 보이지만 나름 신중을 기해 깎고 있다.
불과 칼, 아이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기 이르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를 아이는 배우기를 기다렸고 1월 1일이 되자마자 약속했던 종이를 내보이며 "엄마, 난 이제 난 준비가 되었으니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준비를 시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 우리 이렇게 쭉 이렇게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