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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Apr 27. 2023

아이가 아플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

아이의 약봉지가 쌓여갈 때마다 근심과 한숨이 한아름씩 늘어난다. 아이에게서 떨어질듯한 감기는 또 걸리고 또 걸리면서 반복되고 만다. 혹여 열이 날까, 증상이 더 심해질까 하는 염려로 따뜻한 보리차를 끓이고 도라지조청을 먹이고 목수건을 해주고 습도를 조절한다.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일을 하는 나는 아이가 아픈 게 걱정스럽다라기보다는 공포스럽다. 아픈 아이를 마음 편하게 집에서 간호해 줄 수도 그렇다고 혼자 두고 출근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까봐이다. 그때 느껴야 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아이가 느껴야 하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 애달프다.

나의 우려는 늘 그렇듯 현실이 되었다. 그런 날이었다. 밤새 심해진 기침소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는 끝내 열을 확인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날. 눈이 충혈된 아이를 뒤로하고 출근할 때는 정말 누구라도 붙잡고 원망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열심을 다해 아이를 돌보려 하는데 왜 대체 이런 상황은 또 벌어지는 건가. 그냥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로 느끼는 안쓰러움이 안쓰러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아이를 충분히 쉬게 하지 못하고 옆에 있어주지 못함으로 인해 오는 죄의식은 아이가 10살이 되도록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벼운 알레르기나 결막염이겠지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간 안과에서는 눈에 약간에 문제가 있어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들었다. 방학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검진을 갔는데 왜 여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걸까. 엄마인 나는 왜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한 달 뒤에나 가능한 대학병원에 검진을 예약하고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손만 쓰다듬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말로는 '병원에 다녀왔다.'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현실에서는 병원에서 대기하고 대기하는 동안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줘야 하고 틈틈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고 다음 병원을 예약하고 아이와 나의 일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생각을 해두어야 한다. 현실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의할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떠올린 전남편은 내 이야기에 무심한태도로 "네, 네, 네." 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그런 정보는 자기에게 알려주어도,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기어코 또 실망을 하고야 마는 일은 나에게도 큰 상처다. 그냥 모든 걸 혼자 책임지고 헤쳐나가야 하는 게 덜컥 서러워졌다. 어차피 이혼 전에도 아이가 아플 때마다 입원을 하고 간호를 하고 친정에 데려다주고 하는 동안 전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지만 더욱더 막중해진 책임감에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이리저리 일정을 조정해 부모님 댁에 아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일주일정도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분주하게 집에 도착해 아이의 짐을 챙기고 2시간 30분 거리의 부모님 댁으로 간다. 내일 출근을 하려면 오늘 밤에 다시 내려오는 게 좋을지 밤에 조금 자고 새벽에 일찍 오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하며 아이의 학원스케줄을 조정하고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린다. 그리고 아이는 왜 또 아픈 건지, 아이를 왜 혼자 키우게 된 건지, 왜 주변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부모님 댁은 왜 이렇게 먼 건지 운전대를 붙잡고 답을 구해본다. 모든 것이 버겁다.


내 현실에서는 결국 아픈 아이가 마음껏 아플 수조차 없다. 아이가 아프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으니까. 아이에게 아프면 안 된다며 끊임없이 건강한 습관을 강조하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대책이라는 게 아이의 몫이라기보다는 내 몫이라고 여기기에 운전을 하는 내내 그냥 우울에 휩싸이고 만다. 기침을 하며 열이 나 춥다는 아이를 뒷좌석에 두고 룸미러로 계속 쳐다보며 운전을 하는 동안 일시적인 거라고 아이는 아플 수 있다고, 치료가 불가하거나 죽음을 향해가는 병이 아니니 괜찮다고 되뇌어도 봐도 통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게 억지로 힘을 내 긍정의 기운을 찾는 것보다 쉽다.


그렇게 이번에도 무너져 아이를 걱정하는 밤을 보낸다. 그리고 아픈 아이를 부모님에게 부탁하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집으로 갈 채비를 한다. 엄마가 갈 때 꼭 깨워달라는 아이를 그냥 푹 자게 두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귀에 대고 잘 자라고 이야기해 주고 나온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떠가며 다시 돌아올 때가 돼서야 그나마 부모님에게 아이를 부탁할 수 있는 게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몇 번쯤 반복해야 아이의 작은 기침소리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시기가 올까. 하루하루를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견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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