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신즐하게 아자아자 파이팅!"
아이와 아침마다 각자의 자리로 출발하며 외치는 구호이다. 처음에는 "오늘도 신나게 아자아자 파이팅"이었다가 "오늘도 신나고 즐겁게 아자아자 파이팅"이었다가 지금은" 오늘도 신즐하게 아자아자 파이팅"이 되었다. 아이가 어떻게 저런 말을 생각해 내는지 기특할 뿐이다. 아자아자 파이팅은 같이 외쳐야 하는 부분이고 팔을 흔드는 동작까지 같이 해줘야 한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의 흥에 맞춰주고자 시작했는데 이제는 저 구호를 외치면 피가 돌듯 활력과 생기가 내 몸 한 바퀴를 휘감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생각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주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도 신즐했다 아자아자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혼 후 아이와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피곤하지만 대체로 지키려 노력하는 몇 가지가 있다. 대부분이 아이와 교감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 전 책 읽어주기, 금요일에는 간식을 먹으며 영화보기, 대화장 쓰기이다.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아이가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때부터 혼자 읽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독서'라기보다는 하루에 10분이라도 엄마의 음성을 듣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저녁마다 아이 옆에 누워 책을 든다. 아이가 아이 아빠를 만나러 가지 않는 금요일 저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서 영화를 본다. 둘이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는 시간이 나에게도 큰 기대가 된다. 이혼 후 생각이 많아지는 주말이 더 싫기 때문에 딱히 기쁠 일도 없는 금요일에 가끔씩 콧노래를 부르는 건 아이와의 이 시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화장 쓰기는 최근에 시작했는데 그냥 하루의 감정, 생각, 바라는 일들을 짧게 적는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쓰던 대화장이 생각나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엄마와 특별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공책을 소중하게 여긴다.
처음엔 아이를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나를 위로한다. 지독한 자기 연민과 질투, 증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는 것도 아이를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면서 잡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긴 한숨 끝이 아이의 시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채면 더 몸을 바삐 움직인다. 어느새 아이와는 서로의 슬픔과 아픔같이 소화가 어려운 감정을 말로 내뱉지 않고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수용하기 쉬운 감정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소화가 가능하다. 수용하기 어려운 감정마저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이 관계가 언제고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달아 아이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지 않기를,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하지 않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한다. 해맑기만 해도 되는 어린아이의 삶에 엄마의 감정까지 고려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관계라는 것이 참 어렵다. 놓고 풀고 조절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새 나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런 복잡에 빠질 때면 혼자 조용히 되뇐다. "오늘도 신즐하게 아자아자 파이팅!" 생각을 가볍게 하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