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학교 개학 전날이었다. 아이에게 준비물 목록을 준 후 스스로 챙기게 했다. 아이가 챙기고 나서 확인해봤더니 아침 독서할 책을 2권이나 챙겼다. 2권의 책까지 책가방에 넣고 나니 책가방이 아이의 어깨를 짓누를 만큼 무거워졌다. 평소에 싱글맘에 워킹맘인 나 때문에 돌봄 간식이며 가득 채운 물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는 게 미안했던 차에 그 모습을 보니 속상해 괜히 한마디 쏘아붙였다. 왜 이렇게 책가방을 무겁게 하고 다니냐고. 아이는 대답했다. "개학 첫날이라 아침 독서할 책을 깜빡 잊고 안 가져온 친구가 있을 수 있잖아. 그 친구에게 책을 주면 친구도 읽을 수 있어." 아이의 대답을 듣고 순간 벌에 쏘인 것처럼 정신이 따끔했다. 뒤이어 아이는 "학급문고에 있는 책도 친구들이 책을 안 가져와서 다 가져가면 아마 못 읽는 친구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이가 착각하고 2권이나 챙긴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를 위한 배려였다니! 도대체 이 아이의 마음속은 얼마나 깊고 단단한 것일까. 내 자식이지만 누가 이렇게 키웠는지 대견했다. '그래 공부고 뭐고 인성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아니 살아보니 결국 인성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30이 넘은 지금 깨달았는데 너는 벌써 올바른 어른으로 자랄 준비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하교 후 물어보니 역시나 책을 안 가져온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책을 빌려주며 뿌듯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무거워진 책가방보다 가벼워질 아이의 마음이 기특했다. 아이는 그날도 책을 2권 챙겼다. 아마 전날의 경험을 토대로 삼아 개학 다음날에도 또 책을 안 가져온 친구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역시나 아이의 생각이 맞았고 개학 다음날에도 친구에게 책을 빌려주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미리 생각해 배려하고 가진 걸 나누어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개학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는 이제 친구들도 스스로 책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수긍했고 이제 책을 안 가져온 친구가 별로 없는지 아침에 자신이 읽을 책을 한참 고르더니 책가방에 넣었다. 그날 아침 아이의 모습을 보며 시 한 편이 생각나 아이에게 너에게 꼭 맞는 시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며 낭송했다.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이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마종하 시인 '딸을 위한 시' -
사실 이 시는 아이의 마음에 새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내 아이를 기르고 남의 아이를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남을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라고 하면서 나는 왜 그러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오늘도 아이 덕분에 어른인 내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