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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Aug 19. 2022

아이 사진을 보는 밤

딸에게 하는 사랑고백

외장하드에 있던 자료가 한꺼번에 날아가 복구도 안되어 허탈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라 아이 사진과 영상을 USB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시기별로 아이 이름 1, 2, 3 붙여 저장해놓은 USB 벌써 11개이다. 이 USB를 TV에 꽂아 아이가 면접교섭을 갔거나 곤히 잠든 밤에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항상 애달프게 새벽 1시가 넘어간다. 



아이의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아이의 웃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우는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내려간다. 찍힌 날짜를 확인하고 아이의 나이를 계속해서 헤아려 본다. 저때로 돌아가서 1살 아이를, 4살의 아이를 한 번만 안아봤으면.. 그때의 아기 향기와 감촉이 이제는 희미해져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왜 그때는 그냥 육아가 힘들고 버거웠을까. 다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현재의 아이를 쳐다보다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내린다. 아이가 나에게 준 담쁙한 기쁨이 나에게 남아있는 것처럼 내가 준 사랑이 아이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기를 바란다. 아이는 알까. 네가 나의 낙이고 희망이고 버팀목이라는 것을... 이제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의 생각과 엄마의 생각이 다르면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 아이. 언젠가 엄마도 그냥 한 부족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아이는 실망할까.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장 난 시계처럼 버벅거리면 나를 이끌어줄 수 있을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아이가 크는 만큼 나도 늙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멈춘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게 애석하다. 


2014년, 2017년, 2021년에 머물다 다시 2022년으로 돌아온다. 아이에게 온전히 이 마음을 다 표현하며 사랑을 와르르 쏟아부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화분에 물을 주듯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자랄 수 있을 만큼만 사랑을 주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의 반응 하나하나에 같이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이라 이 모든 것이 어른의 일 같고 힘겹다. 사실 아직 두렵다. 아이가 갑자기 아빠랑 산다고 할까 봐. 아이가 나중에 엄마랑 사는 게 버거웠노라고 말을 할까 봐. 엄마의 노파심과 우려는 표출하지 않으면서 본질에 있는 마음만 전달하는 게 내가 부단히 갈고닦아 도달해야 하는 도착 지점이겠지. 씩씩하게 전남편을 따라 면접교섭을 가 엄마 없는 생활을 하고 혼자 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부족한 건 나임을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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