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준비하고 아이는 학교로 나는 직장으로 나가야 하는 바쁜 아침. 아이가 "엄마는 출근해서 핸드백을 언제 열어?"라고 질문을 했다. 분명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열어서 짐을 꺼낸다고 말했는데 핸드백을 꼭 열어야 한다는 듯이 또다시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가 뭔가 내 가방에 넣어놓았구나를 생각했고 직장에 도착하면 잊지 말고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하여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아이의 편지를 찾은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몇 번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나를 위해 이렇게 귀여운 이벤트를 준비하다니. 밀려오는 일들을 정리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해치워 버리려 빠르게 달려가려던 머리를 멈추고 자리에 털썩 앉아 편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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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은 나는 읽기 전에 설렘은 잊어버리고 당황스러워졌다. 이건 마치 경고장이 같았다. 천사소녀 네티의 경고장을 받은 셜록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사춘기가 올 거라고 예고를 하는 이 경고장 앞에 서자 아이의 성장 속도가 무서웠고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크게 만들었는지 걱정스러웠다. 내가 이혼의 순간을 겪고 아파하고 견뎌내는 6개월 동안 그 옆의 아이도 너무 많이 커버렸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편지라는 올바른 방식으로 진솔하게 표현하며 담아낸 글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 복잡했다. 아이의 유머 섞인 귀여운 편지가 귀엽게만 보이지 않았다.
사미움이라는 단어는 애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엄마에 대한 딸이 가지는 애증. 나도 사춘기 시작 무렵에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고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사랑만 한다고 하기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고 그렇다고 원망한다고 하기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깊어 그렇게 말하기는 싫은 '애증'.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서로 사랑만 하면서 살 수는 없나.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愛가 사라지고 憎만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 愛만을 갈구하지 않고 엄마로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려면 우선 답장을 써야 했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다 내보인 글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을 정리한 다음 한 자 한 자 적었다.
00아 안녕? 엄마야
00이 편지를 받고 엄마가 많은 생각을 했어.
00이가 벌써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준 상처 때문에 너무 빨리 크는 게 아닌지 미안하기도 해. 그래도 엄마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00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인지 엄마도 잘 알게 되었어. 엄마랑 지내면서 항상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00이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00이도 지금처럼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줘. 그렇게 하면 엄마랑 00 이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엄마도 기쁜 일, 슬픈 일을 00이와 함께 나눌게. 그러면 기쁜 마음은 더 커지고 슬픈 마음은 줄어들겠지?
그리고 '움마', '사미움' 이 단어 너무나 마음에 들어. 00이가 그런 단어도 생각해내다니!! '사랑해~~'만 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사 미움의 감정이 많이 들기도 하더라고... 00이가 딱 맞는 단어를 생각해서 엄마도 자주 쓸 것 같아. 더운 여름 엄마랑 건강하게 보내자. 사랑해!
답장은 아이에게 무사히 전달했다. 비록 아이가 보낸 편지 하나로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이 자신도 무어라 규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과정을 시작했다. 아이는 앞으로 몸도 마음도 더욱 성숙해 갈 것이다. 그때 나는 한부모로서 엄마의 역할은 무엇인지.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성인으로 아이를 성장토록 하려면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겠다. 愛와 憎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한쪽에만 깊이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