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이는 3년째 같은 반을 하고 있는 아이이다. 만 3세, 4세, 5세를 쭉 이어서 맡다 보니 3년째 같은 반을 하는 아이가 2명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다. 시은이 역시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아이다. 아니 시은이는 사실 그 누가 봐도 사랑스럽다. 말간 눈에 하얀 피부를 하고 아담한 체격에 다부진 손을 가진 아이이다. 항상 앞머리를 묶어 올리고 화려한 스팽글이 달린 옷을 주로 입고 온다. 나를 보면 선뜻 안기거나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자기를 알아봐 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내가 그 눈빛에 반응해 주면 시은이의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개학날 방학 때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며 준 선물에는 1부터 4까지의 스티커 주머니가 있었는데 자르는 선까지 표시해 두는 세심함이 보였다. 평소에 유치원에서도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집에서도 하루종일 만들고 오리고 붙이고를 반복한다고 한다. 아침시간에 쓰는 식단표에도 한 글자 한 글자 다른 색으로 알록달록 꾸미는 걸 보면 아름답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시은이의 취향이 보인다. 또 시은이는 음감도 뛰어나 한번 가르쳐 준 노래를 음에 맞게 부르고 가사도 쉽게 외운다. 나에게 없는 능력이라 가끔은 시은이가 부럽기도 하다.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마이크를 건네주면 수줍은 듯 앞으로 나오는 시은이의 표정이 떠오른다.
올해 만 5세 반에서 만 3세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만 3세 때도 항상 둘이 붙어 다녔는데 올해도 역시 둘이 자주 놀이를 한다. 사실 그 아이와 놀이를 하는 게 나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시은이는 친구에게 쉽게 동화되고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친구의 의견을 따라주는 편인데 시은이가 그 아이에게 휩쓸린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둘이 교실 밖을 나가 장난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몰래 보다가 놀라게 하면 둘이 화들짝 놀라 교실로 후다닥 들어가 버린다.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시은이기에 곁에 좋은 친구들만 있기를 바라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시은이는 장난을 잘 치고 규칙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자신과 다른 성향의 새로움에 끌리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시은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은 항상 컸는데 워낙 혼자서 잘하는 아이라 들여다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벌써 4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내일은 시은이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반 전체 아이들과 배우고 율동을 만들 예정이다. 시은이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