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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Apr 20. 2023

우리 반, 하빈이

하빈이를 떠올리면 난해하고 복잡한 심경이 된다. 교실에서 씨발새끼라는 욕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이 아이를 자세히 보아 이해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많다. 그래도 아이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이해해 보고자 쓰는 글이기 때문에 찬찬히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하빈이가 왜 자리에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지, 왜 다른 사람을 때리는지, 왜 날카로운 말들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분명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하빈이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하빈이가 분노를 표출할 때마다, 교실밖을 뛰어 나갈 때마다 그 이유를 일일이 파악하고 달래줄 수가 없다. 상처나 피해를 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고 그런 행동을 하는 하빈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 보자고 설득하고 하빈이를 개별적으로 지도하기에는 23명의 아이들 속의 나는 상황이 그다지 넉넉하지가 않다.


나의 한계점을 파악하려는 듯 매일 새로운 과제를 제시해 주는 하빈이는 오늘도 내 한계점을 시험했고 내 한계점은 처음엔 무릎에 있었다가 지금은 머리 위를 훨씬 넘어선 지점에 도달했다. 하빈이는 이 지점을 언제까지 높여놓을 작정일까.  아니 그전에 내가 병들어 아스라이 사라질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희망의 무언가라도 붙잡아 본다. 어쩌면 이 기대와 희망이  내가 교사로서 하빈이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보다 오늘은 무언가 달라져있을 거라는 기대, 낚싯줄을 당기듯 팽팽한 하빈이를 향한 시선이 오늘은 느슨하고 헐거운 시선이 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기대와 희망을 씨실과 날실로 만들어 엮어내면 괜찮은 하루를 짜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직은 그 과정이 버겁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빈이의 성장과 발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순간이 있다. 집중하는 하빈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종이 접기나 조립에 능해 종이접기를 가르쳐줄 때면 열중하는 입모양을 하고 옹골진 손가락을 움직인다. 친구들에게도 하빈이에게 종이접기 방법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면 하빈이는 도움을 줘서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고 다른 친구들은 하빈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제는 종이접기 선생님이라고 불려 종이접기 시간이면 내 옆에 와서 모르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빈이에게 친사회적인 태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종이접기 활동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할 계획이다. 올 한 해가 나에게도 하빈이에게도 편안한 한 해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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