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려 아이의 12살 생일이 돌아왔다. 새벽에 눈이 떠져 초음파 사진과 출생기록부를 뒤적거리다 지금의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가 울적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인다. 홀로 챙기는 네 번째 아이의 생일. 내 안에 내 출산의 노고와 아이가 탄생했던 기쁨만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만 한편 떠오르는 아이 아빠의 부재는 들뜬 기분을 까맣게 덮어버린다.
아이의 선물을 챙기기는커녕 축하 인사조차 없는 아이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이 아이는 나에게만 소중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의 생일을 기억하는지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조금의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지, 아이가 느낄 상실감과 그런 상실감을 보는 나의 상실감이 겹쳐 마음이 아린다.
며칠 전 아이가 아빠의 집에 면접교섭으로 다녀온 이후 아빠가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빠도 여자친구가 생길 수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고 실제로 태연했다. 그런데 아이가 찍어온 사진은 더 이상 나를 태연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가 들킬까 봐 몰래 찍었다는 사진에는 아이 아빠의 여자친구가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둘의 사진이 아이 아빠의 냉장고에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엄마가 남자친구가 생긴 것처럼 아빠도 여자친구가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너에 대한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이 아빠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이 아니 확신이 나에게도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에게 왜 사진을 찍었느냐고, 엄마에게 왜 보여주냐고 묻고 싶었지만 쓰라린 마음에 더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이가 이걸 몰래 찍으며 느꼈을 감정이, 들었을 생각이 나를 시리게 했다. 얼마나 더 강해져야 얼마나 더 떨쳐내야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 시기가 딱 정해져 있다면 그 시기만 바라보며 버텨내겠건만 맑게 갠 같다가도 어느새 흐르고 있던 구름 한 점을 발견한 것처럼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크느라, 나는 키우느라 정말 모두가 수고스럽다. 아이의 생일 축하해 주러 한달음에 오신 나의 부모님까지, 모두의 품이 모여 아이는 오늘도 자라고 덕분에 나도 자란다. 기운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야겠다.
아가야, 생일축하해.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