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배우자에 대한 마음가짐

by 단시간
아이, 아이 아빠와 한 여행



부부의 연이 다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전남편과 사는 시간은 아주 가끔은 일기장에 행복이라는 제목을 달아줄 수 있는 날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불행했고 힘들었다. 그 불행 속에서 어느 날은 결혼사진을 버리고 어느 날은 결혼식 사진을 지우고 어느 날은 전화번호의 이름을 바꾸고 어느 날에는 각종 SNS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결혼 앨범과 스튜디오 앨범은 50L짜리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 버렸다. 결혼액자는 정말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한 수많은 날들 중에 한날에 자동차 바퀴로 밟아버렸다. 증오의 감정이 얼만큼이었는지는 이로써 증명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이혼을 해야 할 때는 지난날을 곱씹을 수 있는 매개체가 남아있지 않았다. 앞으로 살날에 대한 준비만 필요했을 뿐 지난날의 과거는 서류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정말 법적으로만 이어져있는 관계가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다. 같이 찍은 사진은커녕 아예 남편 사진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정말 이 사람이 나와 결혼을 하기는 했던 건지 우리가 만났던 건 맞는지 점점 희미해져 갔고 우리가 결혼했었다는 증거는 아이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관계를 기우고 때우며 사는 동안 나와 전남편은 각자의 외로움을 쌓아갔고 그 외로움의 크기만큼 서로를 찔러댔다. 그리고 너무 깊이 찔러 회복이 되기 어려운 밤에 우리는 헤어지기로 결정했고 그때부터 달리지기로 결심했다. 범속한 마음 대신 이상의 마음으로 전남편을 앞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지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그래도 많은 것들 내려놓고 전남편을 내 남편이었던 사람이 아닌 아이 아빠로만 바라보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앞에 어쨌든이라는 말이 붙을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여태 아이를 같이 길러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한 결과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움이라는 것도 에너지가 있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아이와 둘이 살면서 깨달았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지금은 당장 미움의 잔해를 먹어 고통스럽더라도 내 몸에 붙어있는 미움을 털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빨리 그 먼지들로부터 도망 나와야 했다.


어제도, 오늘도 매일매일 전남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어느 날은 뭘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사람이 미워지기 전에 그래서 또 내 에너지를 쓰기 전에 얼른 미움을 지우개로 지우고 감사함이라는 글자를 꾹꾹 눌러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워할 때보다 고마워할 때가 더 평온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건 내 과거를 자책과 후회고 남기기보다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남편을 만나기 전과 헤어진 후만 이어 붙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라도 하기로 정한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순간만 조금 견디면 괜찮아지는 때가 올 것을 알기에 오늘도 그래도 좋았던 점을 생각하며 이혼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나아간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란 게 얼마나 가변적인지 시간의 힘과 나의 분투 덕분에 조금씩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전남편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나 다르다. 앞으로 지금까지 변해온 마음만큼만 꼭 그만큼만 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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