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이혼을 보여드리기
아이와 둘이 이사 간 집에 참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부모님 지분이 90%인 데다가 전세로 구한 이 집에 집들이하듯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선의를 알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방문의 끝은 대미를 장식하듯 부모님이었다. 결혼하고 내가 사는 집에 한 번도 오지 못하셨는데 이혼하고서야 오신다는 사실이 비통하고 죄스럽다.
부모님이 오신 느낌을 쓰는 글에 사진을 한 장 넣고 싶은데 어떻게 가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신발장에 나란히 놓인 부모님, 아이, 나의 신발을 찍어보기도 하고 부모님이 교체해 준 전등을 찍어보기도 하고 아이와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을 찍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열게 된 냉장고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하고 중노동인 가사활동. 가부장적인 남편과 결혼하고 깨닫게 된 여성만의 의무인 살림에 대해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기에 우선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마음만 생각해본다. 두 분이서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아이스박스 네다섯 개를 가득가득 채워서 3시간가량을 차에 싣고 오시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딸이 잘살기만을 바라셨겠지. 그 음식들을 냉장고, 냉동실, 김치냉장고에 가득 채워주시면서는 끝내 말을 더 하지 못하셨겠지. 예전에는 가족을 생각하면 정겨운느낌보다는 짜증을 많이냈는데 큰 일을 겪고나니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고있다. 이제서야 철이드나보다.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떻게든 이혼의 이유를 밖에서 찾고 싶었기에 한때는 부모님에게서 이유를 찾기도 했다. 왜 부모님은 나의 결혼을 말리지 않았을까? 왜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에 대해 조언해 주지 않았을까? 24살의 딸이 9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결혼이 하고 싶니?"이 한마디의 질문 외에는 더 이상 하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시댁과의 관계를 왜 이렇게 만드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부모님의 탓인 것 같았다.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 나의 선택 하나하나를 믿고 나의 뜻을 존중해주셨는지까지 부모님을 탓했다. 전남편은 시어머니의 폭언에 선심 쓰듯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를 끊어주면서 끊임없이 나와 부모님을 탓했고 우리 부모님도 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남편의 가스라이팅의 결과로 내가 부모님을 탓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전남편이 거지 같은 집에서 자라 거지 같은 것만 배워왔다고 나에게 말을 할 때는 '정말 우리 집이 거지 같은가... 부모님 품 안에서 나도 꽤 안락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부모님을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내 모습이 정말 한심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급했을까 전남편의 결혼하자는 한마디에 모두가 임신을 의심할 만큼 결혼을 너무 급속하게 진행한 것은 분명 내 탓이다.
부모님은 우리 딸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신다며 어떠한 조언도 설명도 하지 않으시고 아이를 봐주시고 살림을 충실하게 하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남편이 부재한 나의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콕콕 쑤신다. 아니 어쩌면 남편이 존재한 삶은 거의 보지 못하셨기에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한편 부모님 두 분이서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이 안도가 부모님 두 분이 큰 병 없이 건강을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도 있지만 한 명보다는 두 명이 균형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도 내면에서 균형을 찾아가야지.
지금은 나는 내 딸에게 우리 부모님처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자식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허용과 자유. 그것이 때로는 자식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나의 모습을 부모님께 가감 없이 보여주며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부모님도 당장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실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이 결정되는 순간에도 전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탓하는 말 한마디 없으시고 전남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나오라는 선량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딸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손녀에게도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주며 아빠와 행복한 기억만을 떠올리게 해주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