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외로움과 심리적인 불안감 해소하기
이혼서류를 제출한지는 두어달이 되어가고 아이와 둘이 살집에 이사를 한지는 한달이 되었다. 처음 이주 동안은 아이도 아빠를 너무 자주 찾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었다. 그 불안함이 내눈으로 보여 나 또한 마음이 애달팠고, 아이는 내가 하는 걱정을 느끼고 또 불안해하고..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빙하가 녹아 내리듯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내 가정을 그냥 지켜만 봐야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다고 느껴질만큼 마음이 평온하다. 아마 많이 바쁜탓인 것 같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고 체크리스트의 무수한 목록을 지우지도 못한채 잠이 들 시간이 된어 버린다.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점검하고 내일의 할일을 준비하다보면 이미 잘시간은 훌쩍넘기고 부랴부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렇게 바쁜 시간들이 차라리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이런저런 후회와 거기에 뒤따라오는 참회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고됨은 마음의 상처를 얼려 놓는 것같다. 지금 당장은 그 상처가 악화되지도 낫지도 않게 꽝꽝 얼려놓는다. 나중에 후폭풍이 어떻게 오든지 간에 지금은 냉동실 깊숙한 곳에 넣어놓고 잊어 버리고 싶다. 아니 우연히 잊혀지기를 바란다.
최근 마음의 번잡스러움을 잊을 만큼 피곤한 탓도 있지만 기복이 없는 이 상태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첫번째로 한 노력은 새벽기상이다. 새벽에 일어나려면 저녁에 일찍자야해서 저녁에 먹던 술을 거의 끊고 하이볼 한잔 정도를 가볍게 마시고 잤다. 그리고 나홀로 깨어있는 새벽시간에 오늘도 이렇게 살아있음을, 오늘도 이렇게 눈을 뜰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그냥 내가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아이를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시작하면 돈도 없고 남편도 없는 이 상황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장벽들이 내가 건너야 할 산과 강처럼 느껴졌다. 그저 묵묵하게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다보면 언젠가 그 끝에 닿아 있을 모습을 상상했다. 매일 아침 새로워졌고 매일 아침 다짐했다.
두번째는 공부를 시작했다. 상황 상 꾸준하게 할 자신은 없지만 지금당장 무언가 집중하고 내 집중을 쏟아야할 것이 필요했다. 현재의 직업과 상황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공부를 하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지금의 이혼한 내가 아닌 공부를 하는 A씨가 되어있는 것이다. 또 나는 불행에 강력한 동기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불행을 동력삼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나에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나아가기로 결심했고 끝끝내는 성취하고 싶다.
세번째는 그냥 외로움을 안고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혼 전에는 왜 내가 외로워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친구도 있는데 외릅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외로웠고 외롭지 않아야할 것같은 마음과 외로운 상태는 계속해서 나를 먼저 장악하려 싸웠다. 그런데 차라리 외로움을 인정하고 지금 눈을 뜨고있는 수많은 영혼의 수만큼 고독이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 위로도 되었다.
네번째는 내 행복을 확신했다. 행복하기 위해 있어야하는 조건들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확신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내 행복을 확신하고 아이에게 그 확신을 확언했다. 그러니 아이도 자츰 안정을 찾았다. 물론 중간에 둘이 부둥켜 않고 펑펑울기도하고 황망한 대지에 서있는 것 같은 두려움도 느꼈지만 이미 선택한 이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믿었다. 이렇게 하다보니 아이가 언젠가 나한테 말했다. "엄마, 엄마가 행복해 질수 있다고 말했는데 정말 행복해졌어." 이때의 감동이란... 씩씩하게 극복하고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직은 가끔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모를 감정에 혼란스럽기도하고 숨죽여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당당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중이다. 모든 사실을 직면하는 것은 아직도 두렵지만 그래도 용기가 있는 날은 상처를 조금씩 열어보며 약도 발라주고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부디 이 상처가 덧나지 않고 흔적도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