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여자의 삶

이혼한 사람, 이혼한 엄마의 삶

by 단시간




이혼한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건 결혼한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설명과 변명이 필요한 일이다. 이사를 나오고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왠지 모르게 엄마, 아빠, 아이가 존재하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고 싶어 '아이 아빠와 상의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마치 내가 지금 아이 아빠와 상의를 할 수 있는 상태인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런 말을 자꾸 했는지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구태여 뒤따라올 질문들을 차단하고 싶었기도 하고 아이를 홀로 키운다는 시선이 두려워 먼저 내지른 것도 있다.


이렇게 변명하고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은 의외로 자주 찾아왔다. 아이와 둘이 가는데 직장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날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직장 상사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는?


물론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만 알고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그 상사에게 악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 직장 상사와는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 했었고, 마주친 장소는 모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함께 와 주말을 즐기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이 아빠가 화장실에라고 잠깐 가서 보이지 않는 건가 싶어서 물었을 거라 생각한다. 순간 아이는 그 질문이 너무나 뜨겁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그 질문을 나에게 휙 던져버렸고 나 역시 손이 델듯한 뜨거움에 당황해서 아이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이 아빠는 이직을 해서 타 지역에 가있어요.


왜 이렇게 말했을까. '그냥 아이 아빠는 잠깐 어디갔어요.'정도로 간단하게 말했어도 될 상황이었는데.. 더군다나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거기서 아이 아빠를 물어볼 줄은 몰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누군가를 마주치고, 그 누군가가 나의 속사정을 말하기에는 멀고 그렇다고 가족의 안부를 안 챙기기에는 가까운 그런 사람이었고, 하필 나는 당황했다. 아이에게는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언제나 당당해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이사실을 항상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하고 있었다. 결국 그날 아이에게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다짐을 받아냈다. 세상에는 모두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거라고, 설명을 하기 어렵고 곤란하니 그냥 우리끼리 다른 사람에게 말할때는 아빠는 멀리서 일하는 거라고 정해버리자고 말이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상황인지, 한심한 엄마의 모습인지 알고 있다. 아이와 이런 거짓말을 모의하고 다른 사람에게 변명과 설명을 하지 않기 위해 아빠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며칠 뒤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모인 친구와 헤어지기 아쉬워 한 친구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남편과 헤어진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친구의 남편은 알지 못했다. 아이와 친구의 남편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는 우리가 이사한 사실을 이야기했고 엄마가 자는 안방에는 TV가 있다고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거기서부터 조금 불안했다. 이 이야기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친구의 남편은 뒤이어 '그럼 아빠는 어디서 자?'라는 질문을 했고 순간 또 정적이 흘렀다. 왜 그런 시간은 더 느리게 느껴지는지 있지도 않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일전의 경험에 있어서인지 조금 멈칫거리더니 '엄마, 나 말해도 돼?'라고 물었다. 차라리 그냥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친구의 남편에게 할 설명이 구구절절하게 느껴져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이런 순간은 앞으로 매번 찾아올 텐데 만나는 모두에게 우리 부부의 헤어짐을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야기한다면 나를 너무 가벼운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지, 나를 참을성이 따위는 없는 엄마로 보게 되지는 않을지 사회적인 편견 또한 두렵다.








이사를 하며 보통 아이 아빠가 했던 일들을 내가 마주하게 되었다. 가스 고장, 보일러 수리, 청소기 수리, 전등 교체 같은 일들이다. 왜 하필 지금 청소기는 고장 나는 것이며 이사 전 점검할 때는 멀쩡했던 전등, 가스, 보일러가 차례로 고장이 나는 건지. 청소기의 나사를 드라이버로 풀면서 아이 아빠의 몫이었던 일까지 다 해본다는 사실이 어이없게도 뿌듯하게 느껴졌다. 또 뿌듯하게 느껴지면서 이 집에 남자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서웠다. 전남편은 아이 아빠, 나의 남편으로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남자의 실체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체는 거대한 신발로, 넉넉한 외투로 우리 집에 있었다. 그 실체가 없어진 지금 나는 잘 때 현관문을 한 번씩 더 점검하게 되었고 외부인이 올 때마다 이 집에는 '남자가 있어요!'라고 티를 낼 수 있는 물건을 곳곳에 비치해두었다. 마치 남자의 흔적을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부적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에 붙여놨다.


결혼 전 아빠의 품에서 안락하게 보내다가 남편의 품에서 안락함을 느끼며 평생을 지낼 수 있었는데 나는 중도에 경로를 이탈하고야 말았다. 아빠에서 남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부러운지.. 길을 못 찾는 신세가 되고 보니 이런 한심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언제나 자립한 상태는 그렇지 못한 상태보다 완전한 상태인데 알게 모르게 전남편에게 의지를 하고 기대며 내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바랐나 보다. 아이와 둘이 살게 된 지금, 이제는 아이에게 나를 의탁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또한 아이도 자립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가는 길을 안내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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