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의 부재와 재혼
언젠가 했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비교적 일찍 결혼한 편인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본인도 결혼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결혼하니 안정되지 않았느냐고. 나는 당연하게 결혼하다고 안정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결혼 전의 불안은 결혼 후의 불안으로 바뀌었고 그 불안 목록 하나하나가 바뀌었을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그 불안의 진폭은 커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결혼한 옆에 친구에게 동의를 구했다. "너도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 친구의 대답은 나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찬물을 맞은 것보다 더 차가웠다. "음... 나는 그래도 결혼 전보다는 안정된 것 같아" 아... 모두의 결혼생활이 나와 같지는 않음을 깨달았을 때의 배신감과 허탈감이란.. 나는 다 나처럼 이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이혼을 진행 중이다.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해서인지 이혼 전에도 가정의 따뜻함, 편안함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이혼을 하고 나니 그냥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여기에 더해 아직까지고 생각하기도 두렵고 버거운 문제가 있다.
대부분 수입과 아이가 걱정일 거라 생각하지만 경제적인 곤란함, 아이의 마음은 이제는 차라리 직면할 수라도 있다. 문제의 실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양육비 산정과 재산분할 때부터 이미 느끼고 있었다. 내가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에 대한 대가가 계산기를 두드리니 앞으로 구할 집은커녕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이 한탄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이사를 나오고 장 보던 어느 날 예전에는 유기농 우유를 샀다면 지금은 1+1 우유로 손이 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아주 확실하게 맞닥뜨렸다. 앞으로는 이전처럼 살지 못할 것임을 말이다. 아이의 마음 또한 매시간, 매초 단위마다 아빠의 부재로부터 오는 아이의 외로움을 확인받고 확인하고 있다.
어떤 문제들은 이렇게 지나가거나 극복하는 과정 속에 있을 때 차라리 더 편안한 경우가 있다. 형태가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어 더 두렵고 무섭다. 전남편의 이사와 재혼이 그 무서운 문제이다. 이 문제는 문득 생각이 나면 저 멀리 안 보이는 곳으로 일단 치워둔다. 하지만 치워둔 자리가 자꾸 신경 쓰이고 눈에 거슬린다. 전남편의 이사가 두려운 이유는 내가 지금 이 지역에 사는 이유는 오직 전남편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터전을 등진채 전남편과 잘해보고자 왔던 이곳은 온전한 가정이 아니고서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왔고 이제는 어디로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완벽하게 정착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남편마저 딴 곳으로 가버린다면.. 내가 유일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아이가 아빠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무너지고 만다. 전남편이 이 지역을 떠난다면 아이는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방황하겠지. 남편은 언제나 떠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한다.
또 전남편의 재혼이 두렵다. 아니 차라리 재혼은 두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재혼으로 파생되는 것들이 염려스럽다. '혹시라도 양육비를 안 주면 어쩌지?, 재혼을 해 아이를 낳게 되면 지금 우리 사이의 이 아이가 받을 상처는 어떻게 하지?' 하는 것들이다. 애초에 남편이 싸우면서 말한 '너 때문에 결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 따위는 믿지도 않는다. 이 사람의 말은 대체적으로 반대로 생각하고 그게 실현될 거라 생각하면 차라리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직 숙려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에게 매일 연락하지도, 아이의 소식을 묻지도 않는 전남편이 재혼을 하면 정말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을 영영 끊을까 봐, 그래 그것까지는 괜찮다. 그 희미해져 가는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를 보게 될까 봐 너무나 무섭다. 그리고 우연히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과 있는 전남편의 모습을 아이가 맞닥뜨리게 될까 봐 무섭다. 이 지경까지 왔다면 내가 미련이 남은 게 아닐까 고민해보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잘 살기를 바란다. 나아닌 다른 사람과 온전한 가정을 꾸려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나 또한 아이와 완전한 행복을 이루기를 바란다.
뜻하지 않은 고민들에 계속 번민하는 지금. 내가 당장 3개월 뒤에, 1년 뒤에라도 웃고 있기를 결혼 후에도 찾지 못한 안정을 찾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