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다했다는 사실.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혼을 결정할 당시에는 우리 사이에 언젠가 있었던 진실했던 사랑을 그 사람은 왜 끝내고자 했던 건지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살면서 닳아 없어졌지만 그래도 한때는 정말 사랑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쯤 지나고 보니 스스로 인정할 용기가 생겼다. 그때의 나는 전남편이 나를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전남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우리의 사랑이 끝난다고 표현하는 편이 덜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정의 이상향이 달랐다. 그 이상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남편은 나에게 현모양처로서 남편과 시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키워내는 역할을 원했고 나는 서로의 업을 존중해주며 각자 사회적으로 일정 정도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삶을 원했다. 전남편의 지향점과 나의 지향점은 너무나 달랐지만 모두 서로의 역할이 필요했다. 남편이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을 이룩하려면 내가 살림과 육아에만 전념하고 남편과 시부모에게 순종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고, 나 역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위해서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린 둘 다 티끌만큼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 정도를 양보하면 딱 그 정도만큼 상대가 희생하기를 원했고 서로의 희생을 담보로 한 양보는 끝없는 실망으로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결국 남편이 생각한 가정의 모습에는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나 역시 점차 남편을 배제시켰다.
이렇게 우리는 이해관계가 다해버린 것이다. 모든 부부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일정 정도는 상대가 필요해야 같이 살 이유가 생길 텐데 나는 정말로 남편이 필요하지 않았다. 헤어지기 2년 전쯤부터는 여름휴가, 겨울 휴가도 아이랑 둘이서 면 갔다. 혼자 묵을 곳을 예약하고 아이와 할 체험을 찾아보고 운전을 했다. 처음에는 주말 나들이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3박 4일 여행도 아이와 둘이서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을 지워가는 것처럼 전남편도 나를 지워갔을 것이다. 어쩌면 이혼하자는 말만 남편이 꺼낸 것이지 나는 하나씩 하나씩 아이와 둘이 함께하는 연습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결혼의 실패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나에게 관계의 끈끈함보다 서로의 필요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그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건실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사이의 해맑은 아이. 이렇게 셋이 함께하는 그림에 실패한 지금 비로소 나의 상태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에 안도한다. 여기까지 오기가 정말 힘들었다. 실패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보다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그 과정들을 생각하면 그동안의 내가 한없이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다. 이 편안함을 가지기까지 끝없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이혼도 버텼는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삶도 이렇게 넘기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못할까 싶다.
이해관계가 다한 인연은 얼른 털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가려한다. 부디 이 평온한 상태가 오래 유지되기를 바란다. 내가 쉽게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중심을 지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