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디어 이혼을 받아들이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감정상태가 되었다. 처음엔 전남편을 설득하려고 했다가 화가 났다가 불안하고 우울했다. 이제 수용의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언젠가 책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닥쳤을 때 차례로 오는 감정의 단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지금 겪는 이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삶에서 겪을 수 있는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를 지금 겪어내고 있는 지금 이 스트레스를 잘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때문에 하나하나 모든 단계를 곱씹으며 빠르지도 느리지 지도 않게 지나갈 예정이다. 그러면 분명 끝에는 태연자약한 삶 그 언저리에 도달해있겠지. 나라는 사람을 세워놓고 피부를 걷어내고 그 안에 근육을 걷어내고 장기와 뼈를 걷어낸다. 그 안에 온전한 내가 있다. 살면서 나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할 기회가 있었나 싶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알아갈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할 계기가 없었는데 나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철저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진취적이고 꼼꼼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혼이 결정되면서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순서를 짓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던 사람은 나에게 정말 질렸을 것이다. 이혼 서류 정리, 이사계획, 재산정리 등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체크리스트를 체크해가면서 사는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 편한 방식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이혼을 하는 게 신이라도 난 듯 저렇게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변수가 있는 삶이 싫어 하나씩 계획하던 습관이 모여서 이렇게 되었다. 처음엔 작은 단위의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계획이 내 삶 위에 있는 느낌이다. 계획을 발 밑에 두고 차례로 밟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건 마치 계획을 이고 지고 가며 비틀거리며 가고 있다. 그래 분명하고 깔끔하게 인정해버리니 마음이 편하다.
또 나는 이해타산적이다. 상대방이 준만큼 딱 그만큼만 나도 되돌려 주고 내가 받은 만큼은 무조건 돌려주어야 한다. 받은 게 상처나 무시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둘려준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배려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거나 배려나 희생으로서 얻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것도 옆에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는 무척이나 괴로웠으리라 생각한다. 부부, 가족관계를 저울질해서 50:50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딱 정해 그만큼만 하려는 나의 모습이 매몰차게 보였겠지.
아직도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처음엔 그냥 항아리만큼의 크기인 줄 알고 그 항아리에 얼굴을 쑥 넣었는데 바다보다도 깊어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얼굴만 살짝 넣어보려 했는데 이제는 아예 그 안으로 쑥 빠져버렸다. 결국 광활한 나의 내면에서 이리저리 헤엄치며 조각조각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삶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든지 지금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진득하게 꾸준하게 탐구할 것이다. 이렇게 내면이 두터워져 가는 시기를 보내면 5년, 10년 뒤쯤에는 이혼이 전화위복이었더라고 추억하며 가볍게 웃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