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맘의 가족동화

<구멍가게 신비한 비밀> - 2화

by 글쓰는 맘



- 2화 -


우리 엄마는 할머니 엄마다.

내가 늦둥이라 또래 친구들 엄마보다 열 살은 더 많다.

그래서 머리에 흰머리도 많고, 말하는 속도도 느릿느릿 할머니처럼 말한다.

그래서 가끔 정말 할머니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엄마한테 흰머리만 염색하면 훨씬 어려 보일 거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냥 푸근하게 웃기만 하신다.


엄마의 흰머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늦둥이인 나 때문에, 엄마의 시간이 이 구멍가게에 멈춰 버린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며칠 전, 이모가 다녀간 뒤부터였다.

이모는 늘 엄마를 위로하듯 말하다가 꼭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하진이만 안 낳았어도 언니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존재가 이 어두운 구멍가게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주변을 맴돌면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내가 우리 집 구멍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피식하며 웃어 보이셨다.

“뭐라고?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몰라. 그냥...”


엄마는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 하진이가 왜 우리 집 구멍이야.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빛인데.”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구멍가게가 싫어. 엄마도... 구멍가게가 싫지?"

엄마는 나를 무릎에 앉히더니 꼭 안아 주셨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아주 푸근하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우리 하진이랑 함께 있는 구멍가게를 정말 사랑해."

"정말?"

"그럼, 여기는 아빠와의 추억이 가득 담겨있고, 너희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걸.”


엄마의 말은 따뜻했고 진심 어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

나는 잘 모르겠다.



며칠 뒤, 엄마가 볼일이 있다고 잠깐 가게를 보라고 하셨다.

난 가게 보는 심부름을 제일 싫어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또 ‘버버버병’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엄마랑 대화할 때를 빼고는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

머리가 멈춰버린 거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낯선 사람이 올까 봐 손과 발을 덜덜 떨며 계산대 의자에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며 가게 안으로 우리 반 친구 소율이가 들어왔다.

소율이 뒤로 엄마도 따라 들어오셨다.


소율이는 구멍가게로 들어와서는 눈이 희둥그레 졌다.

“엄마 이거 봐. 과자도 많고 장난감도 있어.”


나는 당황해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다.

'제가 여기 왜 왔지? 그냥 가라. 그냥 가라. 제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소율이가 말했다.

"어? 하진이잖아. 엄마, 우리 반 친구 구하진이야.”


소율이 엄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구나. 우리 언덕 아래 빌라 2층으로 이사 왔어. 언제 우리 집에 놀러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1학년 때 다현이 집에 놀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집이 겹쳐 보이고, 얼굴이 달아올랐던 그날.

‘구멍가게에 사는 가난한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대답을 하려고 하는 데 입이 자꾸 말랐다.

그리고 버버버병이 시작됐다.

"아... 네. 근... 데..."


소율이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의 팔을 잡았다.

"엄마, 그만 가자."


소율이는 엄마를 끌고 가게를 나갔다.

구멍가게에 혼자 남겨진 나는.

왠지 모르게 숨기고 싶은 것들을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예전에 오빠들이 왜 구멍가게가 쪽팔리다고 했는지.

오빠들을 따라 나도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소율이와 골목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소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진아,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나는 늘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피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도망치지 않고 소율이 앞에 서있었다.

소율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그날은 소율이의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소율이는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갔다.


소율이의 집은 빌라 2층이고 작은 방이 두 개 있었다.

방 하나는 소율이와 엄마가 쓰고 방 하나는 아빠가 계시다고 했다.

“저 쪽 방이 아빠 방이야.”


소율이가 말한 ‘아빠 방’에서 낯선 아줌마가 나왔다.

“간병사 아주머니야. 우리 아빠는 아파.”


소율이는 아빠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깜빡일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식물인간’이라는 말도 해주었다.


“식... 식... 식물인간? “


처음 듣는 단어, ‘식물인간’

낯설고 무서운 단어였다.

나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소율이는 당황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우리 아빠는 항상 웃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눈빛으로 대화해”


그날, 소율이가 들려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꿈틀거렸다.

소율이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말들이 닫혀있던 내 마음의 문을 살짝 열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우리 아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아빠가 아프셨어.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안 계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거든..."


이상하게도 더듬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말을 계속 이었다.

"그래서 난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 근데... 하늘나라에 간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소율이는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어. 하늘나라에 가는 건 누구 때문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래.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그리고 눈썹을 찡긋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확실히 말해 줄게. 너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간 건 너 때문 아니야.”


소율이가 찡긋하며 말하는 모습이 귀엽고 좋았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웃었다.


“우리 아빠한테 인사할래?”


나는 나도 모르게 소율의 손을 잡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