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아줌마, 재취업의 꿈과 눈물
경력 단절 이후 재취업의 시장에 뛰어드는 건 쉽지 않다.
13년 이상 육아를 해오던 경력단절 엄마가 어떤 일을 시작하는 건 두려움이다.
나의 현실을 자각하며 매시간 구겨지는 자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솔직히 반은 눈물과 반은 두려움이다.
얼마 전에 이 문제로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오십을 앞둔 아줌마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 준비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사실 자격증을 딴다고 다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재취업의 현장이 녹록지 않다는 그런 대화가 오가다가 남편이 하는 말.
"재취업도 힘들지만 이직도 쉽지 않아. 요즘 이직 힘들지."
'뭐? 이직?'
갑작스러운 남편의 생뚱맞은 대화 흐름에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대화가 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면 내 감정을 놓칠 수가 있다.
"아... 이직 힘들 거 알죠. 그런데..."
구구절절 다시 설명을 이어가는 데 갑자기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가끔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어의 의미만 집중에서 말할 때가 많다.
티브이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대충 둘러 대며 말할 때도 많다.
남편은 장황해진 내 말을 끊고 회사에서 부하 직원을 다루듯 냉철한 말투로 이직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왜 지금 13년이 넘게 일을 하지 않은 경단녀가 일을 찾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데 굳이 이직을 말하는 것인가?
이직이 쉽다는 건 아니다.
요즘 이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힘듦을 공감한다.
젊은 친구들의 취업난도 공감한다.
일을 찾고 돈을 벌기 위해 모두가 힘든 세상이다.
누구의 힘듦이 더 힘들다를 놓고 비교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니다.
다만 난 경단녀의 재취업을 힘들어하는 아내를 공감해 주길 바란다.
아이들이 크면서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노력에 공감을 바라는 것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난 다시 꾹 참고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
"애 잘 키웠으면 됐지. 어떻게 다 얻길 바래."
“그건 알지만, 나도 일하고 싶은데. 경력단절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고요. “
공감과 응원을 바랐던 나와.
공감 못하는 남편의 대화가 엇갈리며 대화가 길어졌고.
남편은 점점 대화가 귀찮아진 듯. 무표정한 얼굴로.
“요즘 다 어렵지. 아무 일이나 하면 되지 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구구절절 그렇게 설명한 건. 위로나 응원이 필요해라는 뜻이다. 이런 답답아!!
내가 바란 건 “잘하고 있어. 잘 될 거야. 잘하잖아.”같은 따뜻한 말이었다.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표현으로 남편은 MBTI가 "대문자 극 T"다.
그렇게 시종일관 관심 없는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로 마지막엔 내 노력에 찬물을 퍼붓듯이.
결국 “아무 일”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갑자기 내가 왜 아무 일이나 해요? 나 자격증 준비하는 거 알잖아요.”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공부하느냐 애쓰는 내가 안쓰러워서 그런 건가?
아무리 그래도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무 일"이라는 말이 안 그래도 힘들고 예민해져서 상처 난 가슴에 제대로 꽂혔다.
남편은 이제야 상황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얼버무리려 설명을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이 아무 일이나 해도 나는 괜찮다고.”
역시,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저 대답.
난 이미 설명 따윈 들리지 않는다.
"오빠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는 안 괜찮다고. 나 지금 자격증 준비하고 있잖아."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멈췄다.
나는 보통 존댓말을 쓰는데 화가 나거나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대답할 때는 반말이 나온다.
남편은 그제야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남편의 반응이 지극히 정상인 걸 알고 있다.
상처 난 가슴을 위로받기 위해 자주 듣는 "김창옥쇼"를 보면 늘 하는 말이 있다.
"남편이 무뚝뚝하다고요? 자연인이다만 쳐보면서 아내 말은 못 듣는다고요? 대화는 하는 데 말이 안 통한다고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아내와 말이 잘 통하는 남자가 비정상입니다."
보통 50~60대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결혼을 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면.
단란한 가정과 아이들은 없어도 이렇게 내 일 하나 없이 자존감 구기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결혼 초반 6~7년 동안은 일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과 싸웠지만 여자가 밖에서 일하는 걸 싫어하시는 시부모님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육아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일하느냐 20~30대 때 못했던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감사한 시간도 갖게 되었다.
'근데, 대체 지금 뭐가 잘 못된 거지?' 눈물이 났다.
사실 잘못된 건 없다.
다만 한국이라는 사회의 취업난이 경력단절 아줌마의 일자리까지 생각해 줄 여력이 없다.
한국 여자들이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도 맞벌이를 하는 이유를 공감하게 되었다.
물론 개인마다 맞벌이를 선택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이유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일을 포기하고 힘들게 육아를 했는데 돈 버는 것보다 하찮게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좀 크고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재취업을 준비하는데 또다시 하찮은 취급을 받는다.
남편에게 조차 응원을 받지 못하는 아줌마는.
자꾸만 육아 앞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 창피하다.
육아를 하고 다시 재취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나와 같은 많은 엄마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나와 같은 엄마들의 노력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엄마들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중이다.
내가 나를 인정할 줄 알아야 남도 인정할 줄 안다.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안아 주고 있다.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나를 알아줄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