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 - 두 번째 이야기 (2)
『미움받을 용기』는 나와 같이 육아하는 부모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 그런지.
내 감정을 돌아보며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는 시간을 준다.
사실, 마흔일곱 먹고 다 큰 어른이 되어도 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른다.
이렇게 서투른 부모가 두 아이를 육아하고 있다니 가끔 미안해지기도 한다.
영유아 교육학을 공부하면 영유아 심리(감정)에 대한 부분을 중요하게 다룬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교육에 열정적이라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영유아시기와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의 감정과 심리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의 감정이란.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없고 추상적이라서 학습보다 더 어려운 듯하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초등학생이다.
둘째는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첫 째는 이제 4학년이 되었다.
둘째는 이제 유치원 티를 벗는 터라.
아직 학교 생활을 낯설어한다.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 는 것. 많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것.
새롭게 경험하는 낯선 감정들에 대해 어려워한다.
하지만 4학년이 된 첫째는 점점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는 듯하다.
며칠 전 첫째 딸이 너무 좋아하는 수영 첫 수업 시작을 앞두고.
“엄마, 너무 떨려. 떨려서 무서워.”
처음에는 아이가 ‘무섭다’는 말이 싫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까지 하고 싶다고 졸랐는데, 사정상 조금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혹시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바뀐 건가 싶었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잘 몰랐다.
“그래서 하기 싫은 거야?”라고 물어봤다.
“아니, 너무 좋아. 그래서 떨린다고.”
그제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설렌다고?”
“응. 그런가 봐. 설렌다는 느낌인가 봐.”
그렇게 말하고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더니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른이어도 내 감정을 정확히 아는 날은 많지 않다.
하물며 이제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알아가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감정이 낯설 수밖에 없다.
아이의 설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덩달아 설렜다.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감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권위적인 아빠 아래, 내 감정을 표현하는 건 엄청난 두려움과 눈치를 동반했다.
물론 눈치를 보며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된 것은 성실함이라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대신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다.
나의 경우처럼 과거에는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아 상처가 남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그때는 한 집안에 아이도 많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애착은 잘 형성되는 것에 반해 점점 분리, 독립이 어려워지고 있다.
영유아 시기에 가장 중심은 "애착"이다.
아동, 청소년 시기로 넘어가면서 "분리, 독립"이라는 개념으로 넘어간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의 경우도 그런 거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점점 "애착"보다 "분리, 독립"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애착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경우 분리, 독립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나처럼 어린 시절 애착형성이 잘 되지 않아, 부모가 되고 육아를 겪으면서 뒤늦게 정신적이나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의 입장에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사랑을 주는 느낌이고
분리, 독립을 하는 것은 내 아이를 내치는 느낌이라서.
다른 개념으로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분리, 독립도 하나의 사랑이다.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중요한 사랑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보통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들은 분리, 독립도 잘할 수 있다.
부모들의 생각만 바꾸면 된다.
아이들의 과제 - 과제의 분리
“아이가 공부하는가, 하지 않는가, 혹은 친구와 놀러 가는가, 가지 않는가. 원래 이것은 ‘아이의 과제’이지 부모의 과제가 아닐세.” -p160
“타인의 과제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 p160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네.” -p163
이 책에서 부모와 아이 관계에 있어 '과제의 분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제의 분리'란 '타인의 과제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과제의 분리라는 기준은 육아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어려운 부분이다.
어떤 것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하고 어떤 것은 또 너무 방치한다고 한다.
그러한 기준을 잘 세우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 어렵다.
최근에 분리, 독립에 관하여 부분은 다룬 책들이 많아서.
이 부분은 다른 책들을 통해 더 알아봐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경쟁 도구가 아니다.”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 라고 말하지. 하지만 부모들은 명백히 자신의 목적-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일지도 모르고, 지배욕일지도 모르지-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네. 즉 '너를 위해서 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렸기에 아이가 반발하는 걸세.” - p162
나는 가끔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망에 이용되는 장면을 본다.
경쟁을 강요하는 어른들, 그 목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혹시 자신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아이를 내세우는 것은 아닐까?
부모의 욕망이 아이의 인생을 덮을 때, 아이는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없다.
아이들이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가려면, 어른이 먼저 자기 삶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싸우고, 이기려 하고, 남을 무시하는 장면에서 세상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지금, 내 아이에게 ‘건강한 자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이들이 경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버티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 나올 때.
그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아이들을 경쟁의 도구로 이용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쩌면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인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이 아닌가 안타깝다.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하지만 일단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누군가에게 이길 필요가 없네.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도 해방되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되네. - p113
이 책에 나온 철학자의 말처럼
경쟁을 강요하는 문화에서는 종종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연결한다.
둘의 연결은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 이런 경우를 말한다.
본질을 알 수 없는 경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들은 종종, 어른들이 놓인 경쟁의 틀 속에서 배워간다.
그 경쟁은 아이들이 원하는 배움이라기보다,
우리 어른이 만든 문화가 빚어낸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어른스러운 시선’으로 문제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내 아이들은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쌓이길 바라며 나름 애쓴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이 떠오른다.
부모가 되고 육아를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살피며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한다.
박사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주어진 ‘육아’를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감사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모의 노력을 아이들이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내 어린 시절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