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부양한다는 것

배우자에게서 부양 받는 것이 아니라, 부양하는것이 행복이라 생각하기

민법 제 826조 제1항에 부부간의 의무를 규정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 부양하고"라고 돼 있습니다.

서로 먹여살려야 한다는 말인데요, 이혼사건을 진행해 볼수록 이 부양이라는것이 참 쉽지 않은 문제구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아내를 먹여살린다는 표현을 하고, 외벌이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는 내조하며 가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부부가 모두 경제활동을 하니 누가 누구를 먹여살리는 구조는 아닙니다.

대신 나이가 들수록 병든 남편 또는 아내를 돌보는 문제가 부양의무의 본질인것 같습니다.


어떤 중년남성이 상담을 왔습니다.

암이 걸려 요양이 필요했고, 공기좋은 지방도시의 실버타운에서 아내와 여생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고, 남편의 일방적인 요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병을 돌봐주지 않는 아내가 야속하다고 느껴졌고,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짐스러웠습니다.

결국 부부는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다가 삐그덕 대기 시작합니다.

원래 살던 집의 관리비를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 집명의를 누구로 유지하느냐의 문제 등등, 서로의 입장차이가 커지죠.


사실 참 많은 부부들이 이혼까지는 아니어도, 노년에 부양의 문제로 삐그덕거리게 됩니다.

아픈사람은 아파서 괴롭고, 아픈사람의 곁을지키며 돌봄을 감당해야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짐스러워서 힘들어요. 부부가 된다는 것은 젊을 때 서로 불같이 사랑하고, 건강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 만을 함께 하는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약해진 순간에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결혼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는 그런 나~중의 일까지 감히 예상하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부부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힘께 지낼 수 있는 기간보다,

어려운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할 기간이 훨씬 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행복하려고 하는것이 결혼이 아닌가''고생하려고 결혼하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죠.

행복을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의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봐야 하겠는데요,

누군가를 돕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한다면 배우자가 아파서 내가 부양해야하는 그 시간도 행복한 결혼생활 일 것 입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자를 포용하며 원만한 결혼생활은 정말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배우자로부터 부양 받는 것보다, 부양할 각오가 돼 있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은 어느정도 보장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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