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1화
이혼, 진흙탕 싸움이 아니어도 괜찮아.
이혼을 고민하는 분들이 여기저기 검색하다 보면 유책주의, 파탄주의라는 말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유책주의는 민법 제840조에서 규정한 재판상 이혼 원인이 하나라도 있어야 재판상 이혼이 성립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유책주의 이혼법에 따르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외도를 하여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 청구는 기각된다.
한편, 파탄주의 이혼법에 따르면 혼인 관계가 완전히 파탄된 경우에는 유책 사유의 여부에 상관없이 이혼이 허용된다.
우리나라는 유책주의에 근거한 이혼 원인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 명확한 입증이 이혼 성립의 관건이다. 즉 혼인 기간 동안 있었던 상대방의 크고 작은 잘못을 들추고 부각해야 이혼에 대한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진흙탕 싸움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 남편은 아내와 12년 정도 혼인 생활을 유지했고, 남편은 대기업 직원, 아내는 가정주부였다. 둘 사이에는 8세, 7세 남매가 있었다. 남편에게는 아내를 때리거나 외도를 하는 등 치명적인 유책 사유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경제적인 인색함, 자녀들에 대한 무관심, 잦은 음주와 늦은 귀가 등으로 남편에 대한 정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편, 남편은 아내의 냉랭한 대우, 무시, 부부관계 거부 등이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은 이혼을 결심했고, 아내에게 이혼을 제안했다. 그런데 아내는 어린 자녀들을 혼자 키우기도 막막하고, 아이들을 아빠 없는 가정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이혼을 거절했다. 그러자 남편은 이혼은 꼭 하고 싶다면서, "아내가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는 상황이니, 이혼소송이라도 해야겠다"면서 상담을 왔다.』
위 사례와 같이 이혼에 대한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부부 중 이혼을 원하는 쪽은 이혼소송을 불가피하게 택하게 된다. 이혼을 성립시키려면 유책성을 입증해야 하므로 남편은 아내의 크고 작은 잘못들을 있는 증거, 없는 증거 찾아서 지적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유책성을 지적하기 위해 아내가 집안 살림을 지저분하게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설거짓거리가 쌓여있는 싱크대 사진, 언쟁을 주고받은 카톡 대화 내용, 말다툼 내용을 녹음한 녹취자료 등등"을 법원에 제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문제로 다투다 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며, 서로에 대한 미움이 크지 않았던 부부도 이혼소송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미움이 더 커져 버리게 된다.
씁쓸하게도 이처럼 진흙탕 싸움으로의 도발이 바로 유책주의 이혼법의 폐단이 아닐까 싶다.
『 아내와 남편은 결혼한 지 1년 정도 된 신혼부부였고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아내는 매사에 자신감이 있고 추진력 있으며 다소 성급한 스타일이며, 남편은 조용조용하고 약간은 의존적인 성격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소심한 성격이 항상 답답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에 대한 잔소리와 닦달이 많아졌다. 남편은 그런 아내 앞에서 주눅 드는 경우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아내와의 대화를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몰아세울 때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더 나아가 남편은 아내와 부부관계를 하려고 하면 발기가 잘 안 되어 아내와의 성관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멀리하고, 대화도 안 하니 답답하고, 섭섭하기만 했다. 남편은 "아내와 한집에 있는 것 자체가 숨 막힌다 "라며 나에게 이혼 상담을 왔고, 이혼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 측은 "나는 이혼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기각시켜달라"고 대응해 왔다. 』
이 사례처럼 이혼 사유가 다소 명확하지 않은 경우, 또는 입증이 애매한 경우 유책주의 이혼법 제도하에서 이혼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이혼법제는 유책주의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의 잔소리와 닦달 등의 부당한 대우를 명확한 증거로 입증을 해야 하는데 입증하기 매우 애매할 수 있다. 부부간의 대화를 매번 녹음 또는 녹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유책주의 이혼법에서는 이혼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남편이 너무 힘들었던 사실은 알겠지만, 그것이 과연 이혼이 성립할 만큼의 사유에 해당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법이 유책주의 이혼법제기는 하지만 점차 파탄주의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결국 비슷한 맥락에서 위 사례에서 법원은 "혼인 생활 유지가 남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유발한다"라고 판단하여 이혼이 성립되기는 했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지만, 우리 법 제도는 점점 파탄주의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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