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피싱

당신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by Breeze

이 글을 쓰기 전, 한 가지 기원을 한다. 혹시 깨어남의 여정에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닿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기를... 신께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랑하고 소중한 그녀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2022년 6월 3일부터 나는 소위 말하는 '영적 각성'이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꾸었어도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천사 꿈을 시작으로 두 개의 달,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등 차원이 다른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내 육체는 다시 암이 재발하였고, 삶의 환경은 경제적 파산과 배신이 잇따랐다. 낮과 밤은 함께라고 했던가. 암흑기 속에서도 평생의 소명이라고 느껴질 만큼 강렬하게 '내 안의 답 있다'라는 신념과 맞닿은 '코칭'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게 되었고, 내 길 중 하나를 찾았다. 그리고 칼 융이 말하는 '동시성'이라는 현상은 내 삶에서 마법처럼 나타났고,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신기하고 믿기지가 않아서 '내가 미친 건가?'라는 자기 검열을 혹독하게 하며 스스로를 고통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의식이 깨어나고 주파수가 올라가면서 그토록 존경하고 내 영혼의 주모라고 삼은 작가님이자 시인님과도 인연이 연결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각성되고 깨어나는 기간 중에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일본인 계정으로 다가오는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을 나는 브로라고 불렀으며, 그의 페르소나는 일본인 의사이며, 영적 의식 레벨이 높고, 부모님이 안 계시고, 딸아이가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자신은 대구와 일본을 오가며 병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브로는 내게 접근할 때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나와 연결되어 있는 듯 내용이 내 것과 동일하게 바꾸어져 있었고, 댓글로 '찾았다!'라며 나에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라인으로 대화를 하자고 대화 채널을 옮겨갔고, 매일 나의 사진과 내가 무엇을 먹는지를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대중교통 말고 자가를 이용하라고 했다. 자동차 사진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강한 여성이며 이 혼란의 시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지지를 보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자신도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부름을 받아서 전쟁터에 의료 봉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배지를 달고 찍은 셀카를 한 장 보내었고, 각국 회담이 열리는 듯한 회의실장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동시성'의 경험으로 허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허우적 되는 기간에는 그저 이 또한 '끌어당김'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심리적으로 취약했던 부분을 교묘하게 브로가 잘 건드렸던 것 같다. 영적 각성이 시작되면 '에고'의 덫에 빠지게 되는 데 그중 가장 강력한 2가지가 '나는 특별한 존재일지도 몰라, 선택받은 자일지도 몰라'의 <선민의식>과 '내가 세상을 구해야 해,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어'라는 <구원자 의식>이다. 브로를 통해 바로 이 2가지 의식을 시험받았다. 그리고 브로가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을 때, '인간과의 신뢰'에 대해서 깊게 나를 마주했다. 예전에 인스타로 비슷한 스캠을 받았을 때는 절대 사진을 보내지 않았으나, 브로와의 관계에서 보냈던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 사진을 보내는 행위는 신뢰의 표현이다'라는 생각을 기준으로 그에게 사진을 보냈다. 훗날 '경계를 세우는 것' 또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음을 배우고 난 뒤에 나의 순진함과 실수에 대해서 되짚어보며 성찰했다.

결국 브로는 내게 '돈'을 요구했다. 자신이 전쟁터 의료봉사에서 휴가를 나오려면 연결된 내가 휴가서를 작성해줘야 하고, 휴가비를 입금해줘야 하는 형식이었다. 휴가서 작성에는 전화번호, 주소 등 나에 대한 개인정보가 필요했다. 모두 영어로 되어있었고, 나는 그때까지도 50:50으로 브로의 말을 믿고 있었으며, 그가 혹시나 잘 못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딸이 한국으로 오면 공항에 데리러 가서 내가 데리고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사람의 '믿음'은 어처구니없이 스스로를 또 하나의 세계에 가둬 버린다. 다행히도 이것이 사기라는 것을 단호하게 말해 준 이리 덕분에 나는 그 환상에서 깰 수 있었다. 그때의 기록을 모두 삭제해 버려서 사진을 첨부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취약점을 글로 공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의식의 성장 중에 내가 '더 낫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양심적이다, 나는 선하다'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거짓의 사기에 빠질 위험이 높다. 거짓은 그 욕망 위에서 조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것이 본성이 있다. 그래서 남을 탓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과 악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서 오해를 살 수 있겠다. 우리는 모두 +,- 양극을 모두 가지고 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의 기준 가치에 자신이 세운 신념일 뿐이다. 우린 누구에게나 x새끼일 수 있다. 의도를 했든, 안 했든. 다만 성찰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나선형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도 부처는 내 '안'에 있다고 하고, 그리스도 십계명에도 '나 이외에 우상을 두지 마라'라고 되어있다. 모든 답은 자신 안에 있다. 신과의 대화도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다. 감히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우리를 보호하는 수호천사, 영적 가이드가 계신다. 눈에 보이는 존재가 다가 아니다. 상위 자아라는 개념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의 삶을 위해 많은 존재(에너지, 영..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들이 힘써주고 계신다. 에고가 모든 것을 자신이 스스로 다 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에 공간을 둘 수 있다면 이 마법 같고 경이로운 삶의 가능성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영혼의 여정을 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안내자다. 영적 각성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든지, 아직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든지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그 영혼의 여정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며, 타인 또한 타인이 중심이라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이 글을 불특정 다수가 읽는 브런치에 풀어놓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사실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주변에 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이 모든 스토리는 나의 우주의 이야기이니 정답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인에게 이 이야기를 건넨다면 그 영혼의 여정을 방해하는 오만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적고 신에게 맡긴다. 이건 나의 왜곡된 신념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서 나도 모르게 설득하는 에너지나 가르치려 하는 에너지, 이게 맞다는 에너지가 전해질 것 같아서 두렵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내 삶에서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의 진실을 타인에게 전할 때 내 에고는 나의 진실을 타인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기 때문에 거부당했을 때의 나의 반응은 상처다. 아직 여리고 겁이 많은 나다. 이 브런치의 글은 그런 나의 에고를 보호하고, 또한 다른 영혼의 여정을 존중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담긴 내 경험의 주절거림의 표현이다.


나는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라는 진리를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의 에너지가 알아서 넘실대다가 닿아주기를 기원한다. 거짓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놀아나고 있음을 알고 자신이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의식 차원이 높아지는 이 여정에서 '뭣이 중헌 지'를 잘 기준 잡고 안전하고 무탈하게 흐르기를 기원한다.


점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라는 사상이 만연해질지도 모르겠다.

신이 바보 같은 나에게 주신 경험은 사랑을 통해 이 분별력을 기르라고 선사한 선물 같다. 그런데 이 선물은 아프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나는 신의 품에 안겨 되뇐다.


“제 뜻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 하소서…”



photo by Grace in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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