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면 뭔가 되는 줄 알았다는 허니 너의 한 줄에 끄덕이며 답장해. 난 어른들의 세상은 다른 것인 줄 알았어. 고등학생 때 법과 사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교실에서 지금은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앉아 있지만, 앞으로 20년 뒤에는 같은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라며, 한 교실에서 같은 위치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한 시절이라고 하셨어. 세상 밖은 전쟁터라고도 흔히들 말하기도 하고, 그 시절 드라마를 보면 서른 살만 되어도 엄청난 커리어 우먼이 되어서 일잘러의 모습이 나왔잖아? 그런 것들을 듣고, 보고 자라나면서 어른들의 세상은 대단히 다르게 작동하는 무언가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옛 시대에는 비녀를 꽂고, 불혹이라고 불리며 '어른 인증'이 끝난 시기까지도 난 그 시절 상상했던 어른들의 세상은 아직 보지 못한거 있지.
내가 학교를 졸업을 하고, 돈벌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본 세상은 '조별 활동의 연속'이었어.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들과 조별 활동, 결혼을 하고는 배우자와 조별 활동, 육아에서는 아이와 공동 양육자와의 조별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고. 학교와 하나 다른 것은 선생님과 교과서 대신 삶 그 자체가 선생이고, 교과서라는 것이야.
허니야, 너는 조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나에게는 '신뢰'야. 신뢰를 지켜내기 위해서 정직하고,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인내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때로는 그 '신뢰'가 있어서 여유를 가지게 되고,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함에 충분해지고 말이야.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어서 였을까, 처음으로 '신뢰'가 깨지고, 의심이 관계에 독약처럼 퍼졌을 때 지옥문이 열린 것 같은 고통이 시작 되었어. 의심이 되어 그의 말을 제 3자에게 확인하는 문자를 보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어쩌다가 우리 관계가 이렇게 뒤에서 확인을 해야하는 사이까지 되어버렸나 하는 자괴감과 죄책감과 실망감은 지금도 눈물이 핑 돌아. 그 시절에 처음으로 알았어.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어느 것이 더 행복한가?'라는 기준말고, '어느 것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인가?'라는 기준이 세상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 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은
만약에 삶의 어느 길에서 기준이 '고통'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잘못 된 방향이라는 거야. 그 길은 반드시 돌아서 나와야하는 길이야. 그 때의 나는 이 사실도 몰랐지만, 알았다해도 용기가 없었어서 못했을거야. 다만 내 삶은 엄청나게 나를 사랑해서 그 길을 다 부셔버리더라도 방향을 재정렬 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아니다 싶을 때는 아닌거야.
동굴의 출구에서 새로운 길 앞에서 쭈구리고 앉은 내게 너의 마지막 문장은 오늘 내 마음을 똑똑, 두드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라던 행복이나 의미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만들어낼 때가 됐다는 겁니다.
- 묘연한 삶, <사랑이 흘러간 후에 남겨진 것들 2화>
아무래도 세상과 연결 되어 조를 다시 짜서 시작을 해야겠지?
이번 감기만 좀 물러가면 움직여볼게. ^.~